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의혹의 정점에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윤 대통령 측이 제기하고 있는 ‘수사 주체 논란’이 대표적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계엄 사태 초기 여러 수사기관은 경쟁적으로 수사에 뛰어들었다.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저마다 ‘내란사범을 단죄하겠다’며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윤 대통령 측은 수사의 키를 쥔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한을 부정하고 있다. 공수처에 수사권이 없으니 출석 요구 불응은 당연하고, 체포영장 청구는 위법하며,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어도 집행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에 성공해도 윤 대통령 측이 조사받지 않겠다며 구치소에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재판에 넘겨진 뒤 적법한 주체에 의한 수사가 아니라며 공소 기각을 법원에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윤 대통령 측의 이의신청을 기각하며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을 인정한 만큼 윤 대통령이 조사에 불응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측이 계속해서 수사 주체 논란을 제기하며 수사·재판을 지연시킨다면 결국 특별검사가 상황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계엄 사태 초기 각 수사기관은 ‘우리가 내란 수사를 할 수 있는가’를 두고 치열한 법리 검토를 했다.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법원에서 내란죄로 유죄를 확정받은 뒤 우리 사법체계에서 다시 내란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87년 헌법으로 민주화된 세상에서 누가 내란죄를 예상했겠는가”라며 “수사기관이 대비를 못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형사사법체계도 내란 수사에 적합하지 않은 방향으로 바뀐 상태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내란죄 수사를 개시하지 못하는 기관이 됐다. 검찰은 직접 수사가 가능한 경찰공무원을 입건한 뒤 윤 대통령 등을 공범으로 수사하는 우회 전략을 택했지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까지 수사권 논란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대통령, 군장성, 경찰 고위간부를 전담으로 수사하라고 만든 공수처도 내란죄 수사 주체 논란을 끊임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사람은 수사할 수 있지만 내란죄는 수사하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 탓이다.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을 지낸 김남준 변호사는 “처음 공수처법을 만들 때 내란죄까지 넣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내란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현행 형사사법체계에서 명확한 내란죄 직접 수사권한이 있는 곳은 경찰뿐이다. 공수처는 경찰과 공조수사본부를 꾸렸다. 이후 검찰과 경찰에 이첩요청권을 행사해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 주도권을 쥐려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를 수사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모든 수사에 불응하고 있다.
공수처는 직접 수사가 가능한 직권남용죄로 수사를 개시한 뒤 ‘관련 범죄도 수사할 수 있다’는 공수처법을 활용해 내란죄까지 수사를 확대했다. 이는 앞서 서울중앙지검이 윤 대통령이 피해자였던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할 때도 사용한 법리다. 검찰은 배임수재죄의 ‘관련 범죄’인 명예훼손죄까지 함께 수사했다.
서울서부지법도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이의신청을 기각할 당시 이 같은 ‘관련범죄 조항’을 활용한 수사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직권남용은 공수처법 항목에 포함돼 있는 범죄이고 그것과 관련 있는 내란죄를 혐의사실에 포함시켰다고 해서 위법이라고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은 수사 주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 측이 기소 이후에도 ‘부적법한 수사 주체가 확보한 위법수집증거다’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체포 이후의 증거 수집은 전부 위법수집증거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이 사실상 내란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것인 만큼 수사기관에서 확보한 진술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향후 유무죄 판단에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체포의 절차적 문제로 법관이 내란죄 사건을 통째로 공소기각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이 같은 논란을 모두 정리하려면 결국 특검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전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당장 상설특검 후보 추천 의뢰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최 대행이 특검 임명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의 내란죄 수사를 위한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은 지난달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최 대행이 특검 후보 2명을 추천 의뢰해야 구성 절차가 시작되지만 그는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가 상설특검 후보 추천 규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결론을 내리기 전에는 후보 추천을 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검 도입 전까지는 흩어진 수사 주체 간 협력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런 사건일수록 공수처가 검찰과 긴밀히 협력해 증거를 어떻게 모을지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검찰 입장에서도 공수처가 수사를 잘해야 윤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재환 성윤수 한웅희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