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은 한국 경제의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현 상황의 본질을 생산성이 정체된 산업 경쟁력에서 찾는다. 조 원장은 지난달 27일 세종시 KDI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외환·금융 위기를 겪은 뒤로 경쟁력·생산성 강화라는 측면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약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뚜렷한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4대 개혁 이런 것도 방향성은 맞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사회적 환경에선 갈등 때문에 이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다음 정부가 어떤 정부든 (경쟁력·생산성, 4대 개혁 등)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며 “속도는 어떨지 몰라도 등대만큼은 확실히 보고 가야 할 거 아니냐”고 덧붙였다.
비상계엄과 탄핵이 부른 혼란에 대해선 “외환위기 같은 상황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헌법적 절차에 맞춰 빨리 불확실성을 없애야만 한다”고 말했다. 국민에게는 “좀 더 차분해지면 좋겠다”며 “너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현 한국 경제 상황을 총평한다면.
“전체적으로 어렵다. 아무도 예상 못 한 일들이 벌어졌고 어떻게 마무리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이런 불확실성은 틀림없이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 다만 1997년 외환위기 같은 상황까지는 안 갈 것으로 생각한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실물지표 하향 우려가 적지 않다.
“불안 심리가 많을 때는 금융지표부터 영향을 미친다. 주가와 환율이다. 다만 나라가 들썩인 거에 비하면 주가가 잘 버틴다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거 같다. 원·달러 환율도 오르기는 했지만 우리가 환율 2000원, 3000원인 세상에서 살 거라고 믿지는 않는다. 최근 신용카드 사용액 집계를 보면 (소비도) 크게 떨어지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여파가 큰지 안 큰지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1400원 중후반대 환율 부담이 큰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외환시장 가서 달러를 공급하는 건 ‘해열제’ 먹는 거나 다름없는 일시적인 수단이다. 기본적으로는 국내 불확실성이 없어져야 한다. 우리가 가진 시스템이 헌법적 절차에 맞춰 이뤄지는 걸 보여주는 게 해외 시각에도 도움을 준다.”
-국민 불안감은 어떻게 하나.
“정치적 문제라 얘기하기 어렵지만, 일반 국민 입장에선 좀 더 차분해지면 좋겠다. 삼성전자 가치가 2~3년 뒤에 괜찮을까 생각해야지 당장 내던지는 게 답은 아니다. 한 발자국 뒤에서 차분하게 생각하고 대응하는 게 본인 그리고 경제 전반에도 좋다. 너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올해 경제성장률 떨어질 수밖에 없는 듯하다.
“큰 흐름에서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추세인 점은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 더 내려갈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과거와 달리 후발 주자의 상대적 이점이 거의 다 사라져서 선도적으로 나가지 않는 한 성장 지속은 힘들다. 2% 내외 성장하는 게 절대 못 하는 게 아니라는 기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다만 지금은 하방 위험이 훨씬 커진 것은 사실이다.”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은 어떻게 가야 하나.
“한국은 외환·금융위기를 거치며 너무 금융적 측면만을 강조해왔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경쟁력, 생산성 향상 측면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4대 개혁도 방향은 맞다. 문제는 정치·사회적 환경에선 갈등을 많이 일으키기 때문에 이를 잘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산업 정책은 잘한다고 해도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정책도 아니다. 그래서 정치권은 더 관심이 없다. 다음 정부가 어떤 정부이든 앞으로는 이 문제에 우리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주면 좋겠다.
“지난 30년간 미국 등 다른 선진국하고의 격차가 계속 벌어졌다. 도대체 그 배경이 뭔가 봐야 한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 등은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성장한 거다. 정부는 방해를 안 했을 뿐이다. 인공지능(AI)도 발전을 촉진하며 여기서 나오는 부작용을 좀 완화하려고 한다. 규제를 앞세워 발목을 잡는 유럽과 다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규제 만능주의가 만연해 있다. 과거 ‘우버’ ‘타다’가 금지된 점이 굉장히 아쉽다. 기득권 반발을 극복하지 못했다. 경제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에서 대다수 소비자의 이익은 거의 무시된다. 앞으로는 다수의 이익을 이해당사자들 반대로 못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노동시장의 경우, 미국은 나이로 차별하면 불법이다. 노동자가 생산성만 있으면 회사에서 내보낼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한국은 생산성과 관계없이 정부가 정한 법적 정년이 앞선다. (한국이 법으로 정년을 보장함에도) 미국이 50대 이상 평균근속연수가 높아지는 반면 한국은 그때부터 급락한다. 이런 식의 규제를 통해 경제가 언제까지 지속가능할지 의문이다. 과거에 제도를 만들 때 그런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수십년이 지나며 환경이 바뀌었는데 제도는 못 바꾸고 있다. 기득권이 된 계층 때문인데 이런 것들이 밑바탕이 돼서 산업이 어려워졌다. 단기적 어려움 있더라도 우리가 어떤 경제 시스템을 가져갈지를 밑바탕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요즘 손녀 보는 게 낙인데, 손녀 시대 애들이 좋은 세상에서 좀 더 잘 살면 좋겠다. 어떤 정부든 그런 쪽으로 좀 정책을 진행하길 바란다.”
세종=신준섭 이의재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