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경쟁력 약화와 정보기술(IT) 제품 수요 부진으로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6조원대를 기록하며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표를 받았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반도체에서 승기를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매출은 75조원, 영업이익은 6조5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8일 밝혔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 분기보다는 5.18%, 29.19%씩 줄었다. 특히 영업이익은 시장에서 예상한 7조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증권가는 영업이익을 9조~10조원으로 예측했다가 최근 7조원까지 낮춰 잡았는데 낮춘 전망치에도 부합하지 못한 것이다. 다만 연간 매출은 300조800억원으로 2년 만에 다시 300조원을 넘겼다.
스마트폰, PC 등의 수요 침체와 반도체 사업 수익성 악화가 실적에 타격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은 IT 제품 업황 악화로 매출과 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인공지능(AI)을 위한 고용량 서버 등 수요 확대로 4분기 기준 매출은 역대 최대였지만, 연구개발 및 선단 공정 생산 비용이 크게 늘었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모바일 제품 수요 부진으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TV, 가전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에 대해서도 “모바일 신제품 출시 효과 감소, 업체 간 경쟁 심화로 실적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5세대 HBM(HBM3E) 납품이 늦어지는 것을 위기의 핵심으로 지목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CES 2025 현장에서 “삼성전자가 HBM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게 될 것이란 사실에 큰 확신이 있다”며 아직 퀄 테스트(품질 평가) 중임을 시사했다. 황 CEO는 “삼성은 (HBM의) 새로운 디자인을 설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다만 그는 “삼성은 해낼 것이다. 그들은 매우 빨리 일하고 있다”고 하면서 엔비디아가 처음 사용한 HBM도 삼성전자 제품이었다고 언급했다.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은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올해 반도체 시장이 ‘상저하고’로 전망되면서 1분기에도 삼성전자의 유의미한 실적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저가 물량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상반기 전체적인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AI에서 발생하는 수요는 비교적 안정적이겠으나, 관건은 실물 경기의 회복”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오는 31일 부문별 영업이익을 비롯한 지난해 4분기 확정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증권가는 반도체 영업이익을 3조원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3.43% 오른 5만7300원에 마감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과거에도 ‘최악은 지났다’는 투자 논리로 삼성전자의 실적 쇼크 이후 주가가 반등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