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모실까요 고객님.” 미국 자율주행 택시 업체 ZOOX 차량에 탑승하자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 차에는 운전사도 없고, 운전석도 없다. 일본 자율주행 스타트업 TIER IV의 차량에도 운전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의 도움 없이 오로지 카메라와 센서, 소프트웨어에 의해 자동으로 도로를 누비는 ‘운전석 없는 차량’이다. 차주는 탑승만 하고 운전은 차량이 주도하는 ‘자가용의 택시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7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가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는 250개 이상 모빌리티 기업이 참여해 기술력을 자랑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전시는 ‘운전석 없는 자율주행차’였다. 이날 LVCC 웨스트홀에 마련된 다수 기업의 전시 차량에서 운전석을 볼 수 없었다.
ZOOX 부스에는 민트색상의 4인승 박스카가 전시됐다. ZOOX는 미국 빅테크 아마존이 2020년 13억 달러(약 1조9000억원)를 들여 인수한 기업이다. 이 차량의 가장 큰 특징 역시 운전석의 부재다. 언뜻 보면 케이블카로 착각할 정도로 ‘커다란 직육면체’에 바퀴가 달린 모습이다. 이 차량은 상부 모서리마다 설치된 센서·카메라 모듈이 운전자 대신 주변을 살피며 사각(死角) 없는 주행을 가능케 한다. ZOOX는 ‘It Drives, You Ride(너는 타기나 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며 완전 자율주행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ZOOX 관계자는 “미국 전역에서 이 차량이 운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자율주행 스타트업 TIER IV가 공개한 자율주행차도 운전석을 없앴다. 6명이 탑승하는 흰색 박스카 모양의 이 차량은 완전 자율주행 모드로 운행한다. 이 회사에서 내놓은 20인승 자율주행 버스는 실제 일본 도로를 누비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현재 도쿄 신주쿠·오다이바 등 도심 지역에서 운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운전석 없는 자율주행 차량의 진가는 도시가 아닌 시골 교외 지역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인구가 7만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가노현 시오지리시(市)가 대표적이다. TIER IV 관계자는 “인구가 줄어들어 버스 운전사조차 구하기 힘든 시골 지역에서 운전석 없는 자율주행 차량이 인기”라고 전했다.
미국과 일본이 선보인 운전석 없는 자율주행차는 인류가 직면한 인구 절벽이라는 미래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이런 자율주행 차량은 인구 소멸 지역에 거주하는 교통 약자에 대한 획기적인 복지가 될 수 있다. ZOOX 관계자는 “현재 자율주행 택시는 일반 택시와 요금이 비슷하지만 대량 생산에 들어가면 운임이 대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인구 감소 문제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각종 규제 탓에 일본 같은 파격이 쉽지 않다. 실제 서울·세종시 등에서 운행 중인 자율주행 버스에는 운전사와 안전관리자가 함께 탑승하고 있다. ZOOX 차량을 살펴보던 관람객은 “한국에서는 무인 차량에 운전사가 함께 탑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기자의 말에 “그걸 왜 ‘무인’이라고 부르느냐”고 반문했다.
이번 CES에서는 스마트차량은 무조건 고가의 최상위 세그먼트 차량이라는 선입견을 깨는 기술도 소개됐다. 한국 업체 스마트레이더시스템의 ‘4D 이미징 레이더’는 버스·승용차 등에 부착해 내외부 동작을 감지하는 방식으로 차량의 스마트화를 돕는다. 특히 주의가 산만해 교통사고율이 높은 어린이용 차량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설명이다. 이런 탈착형 모듈의 가장 큰 장점은 일반 차량에 사후 부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회사의 기술을 적용하면 최신 차량을 구매하지 않아도 ‘차량의 스마트화’가 가능해진다. 이 업체 관계자는 “아직 사업화 단계는 아니지만 이미 출고된 차량에 모듈을 사후적으로 장착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10년 된 중고차를 구매해도 얼마든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셈이다. 향후 미래에 스마트차량이 뉴노멀로 다가왔을 때 높은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소외된 교통 약자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라스베이거스=글·사진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