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정의구현 하는 노비… 카타르시스 안기는 ‘옥씨부인전’

입력 2025-01-09 02:48
우연한 사건으로 양반가 여인 옥씨부인이 된 노비 구덕이는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법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고쳐나간다. 남은 회차에서 구덕이와 옥씨부인 중 어떤 정체성으로 아야기를 마무리할지가 관건이다. JTBC 제공

몇백 년이 지났음에도 조선시대와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이 있다. 힘을 이용해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교묘히 빠져나가는 권력자, 이와 달리 속수무책으로 불의에 당하는 민중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법을 통한 정의구현’ 이야기는 여전히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JTBC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옥씨부인전’은 차별받는 약자 중에서도 가장 힘이 없는 여자 노비가 법이란 제도적 장치를 이용해 ‘만인의 평등’을 실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옥씨부인전’은 도망 노비인 구덕(임지연)이 우연한 사건으로 양반집 딸 옥태영의 신분으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구덕은 ‘외지부(조선시대 변호사) 옥태영’으로서 활약한다.

그간 제작돼 온 사극은 역사적 사건에 집중한 정통 사극이거나 로맨스를 중심으로 사극의 외피만 덧씌운 퓨전사극이 대부분이었다. 태생적 신분에 따른 계급이 정해져 있던 시대적 배경은 당연하게 재현됐다. 노비가 전면에 나선 이야기는 ‘추노’ 정도다. 하지만 ‘옥씨부인전’은 노비를 넘어 평범한 서민, 어린아이, 소수자 등 권력자의 폭압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약자를 법이란 울타리 안에서 보호한다. 심지어 구덕은 ‘법 앞에선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며 자신을 죽이려 했던 원수까지 돕는다.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이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이야기는 지극히 현대적이다.

주인공 설정도 흥미롭다. 외지부란 직업을 가진 태영을 비롯해, 양반의 신분이지만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진 성윤겸(추영우)이나 반쪽짜리 양반의 신분을 버리고 전기수가 된 천승휘(추영우) 모두 흔치 않은 설정이다. 모두 제도권을 벗어난 인물인 셈이다. 이들이 공고한 제도적 폭력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과정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최근 인기를 얻었던 ‘사이다’ 드라마들이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한 것과 달리, 구조적 폭력에 법 제도로 맞선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8일 “노비 구덕이가 옥태영이란 이름으로 법적인 활약을 하는 데서 오는 모순과 균열이 있다. 조선시대 법치의 틀에서 벗어난 두 인물이 벌이는 행동에 초점을 맞춰 본다면 하위주체들의 반란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옥씨부인전’은 전달하려는 주제는 무겁지만 중간중간 유머 요소를 넣어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한다. 특히 노비인 막심(김재화)과 도끼(오대환), 쇠똥이(이재원)의 티키타카와 도라이, 수도거(스토커), 도불경오(도플갱어), 매소두(메소드) 같은 현대의 말을 그럴싸한 한자어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단어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요소들이 힘을 발휘한 덕에 ‘옥씨부인전’의 시청률은 첫 회 4.2%에서 지난 주말 방영된 10회에서 11.1%로 2배 넘게 뛰며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옥씨부인전’은 앞으로 6개의 회차를 남겨뒀다. 이 드라마가 웰메이드 사극으로 막을 내리기 위해선 구덕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펼쳐진 이야기에서 구덕은 자신이 구덕인지 옥태영인지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다. 윤 교수는 “지금까지의 행동을 한 주체가 옥태영이 아닌 구덕이어야 이 이야기가 의미 있을 것”이라며 “첫 회, 첫 장면에서 ‘네 이름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구덕이 어떤 답을 할 것인지, 그 장면이 어떻게 정리되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