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탄핵심판, 진영 대결로 흐르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입력 2025-01-09 01:30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인은 지난 3일 변론준비기일 심판정에서 탄핵심판을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전쟁’이라 규정했다. “형식적으로 소추인이 국회, 피소추인이 대통령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소추인이 야당, 피소추인이 대통령과 여당이다. 정권교체 세력과 정권유지 세력,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의 다툼이며, 집단과 집단 대결의 장, 체제·가치·이념 투쟁의 장, 전쟁의 장인 것이다.” 며칠 뒤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그대로 반복한 이 주장은 탄핵심판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의 원인은 비상계엄이란 행위였다. 그것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판단하는 지극히 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진영 대결의 프레임을 씌워 본질을 가리고 책임을 희석하려 한다. 국가 통합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거꾸로 국민을 내 편 네 편 가르는, 대단히 위험한 변론 전략을 택했다.

선동하듯 꺼내든 윤 대통령 측 주장처럼 탄핵심판과 내란 수사가 진영 대결로 흐르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 관저 앞 시위대가 이미 둘로 나뉜 상황에서 국민의힘 의원 수십명이 보수 진영 집회에 합류하며 법 집행 현장에 정치색을 입혔다. 대통령의 물리력에 법이 우롱당한 체포영장 사태의 본질을 진영 대결의 산물인양 호도하는 행태였다. 탄핵소추서의 ‘내란죄 삭제’ 논란은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를 의식한 더불어민주당의 탄핵 속도전이 초래했다. 이 대표의 조기 대선 출마를 위해 탄핵심판 속도를 높이려는 시도는 여권의 거센 반발을 부르며 진영 대결의 복판에 탄핵소추서를 끌어들였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권성동 원내대표가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에게 “(재판관 두 명이 퇴임하는) 4월 18일 이전에 심판을 끝내선 안 된다”는 시간표까지 제시하며 탄핵 지연전을 더욱 노골화했다. 정치권의 이런 공방에 헌법재판소는 연일 해명성 입장을 내놔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8일에도 “헌재가 권 원내대표 요구를 수용했다”는 김용민 민주당 의원의 의혹 제기에 “사실 무근”임을 공지해야 했다.

윤 대통령 측의 ‘탄핵심판=진영 대결’ 전략을 정치권이 점점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철저히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할 탄핵심판을 정략적 진영 논리로 물들이는 것은 헌정질서의 회복을 가로막는 일이다. 그 결과에 대한 수긍과 승복을 가로막아 더 심각한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탄핵심판은 무엇보다 질서 있게 이뤄져야 한다. 여야 모두 엄중한 절차에 왈가왈부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