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만 원 포인트 개헌” VS “기본권·지방분권 등도 담아야”

입력 2025-01-08 18:33
게티이미지뱅크

12·3 비상계엄 사태로 시작된 지금의 탄핵 정국은 헌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혔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개정 헌법에 담을 내용과 범위를 놓고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 목소리가 중구난방 분출하다 보니 논의가 본격화돼도 공통분모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국민일보가 최근 학자, 원로 정치인 등 40명의 전문가를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간극이 확인됐다. 학계에선 1987년 이후 38년이란 세월이 흐른 만큼 달라진 시대상에 맞춰 헌법에 반영할 각종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에 비해 정치 원로들 사이에서는 자칫 개헌 논의가 표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골자인 권력구조 개편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우세했다.

헌법학자인 노기호 군산대 교수와 정치학자인 정회옥 명지대 교수는 8일 한목소리로 “현행 헌법에서는 기본권의 주체가 ‘국민’으로 돼 있는데 국내에 외국인과 이주민이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를 고려해 대상을 ‘인간’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인공지능(AI)이나 디지털, 기후 문제 관련 기본권을 담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대적 과제를 담는 일”이라며 “87년에는 독재 종식이 시대적 과제였다면 오늘날의 과제인 복지, 양극화 해소 등 문제도 헌법에서 심도 있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 문제로 대두된 수도권 과밀화 방지를 위해 헌법에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내용을 반영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심경수 충남대 교수는 “선진국 중 우리만큼 수도권 편중이 심한 나라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를 ‘디지털 강국’ 위상에 걸맞게 사이버 영토까지 포함하자(유준상 국민의힘 상임고문)는 제안도 나왔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에서 논란이 된 헌법 규정에 대한 보완 작업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국헌법학회장인 조재현 동아대 교수는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던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요건’(권한대행 탄핵 시 의결정족수) 등도 헌법상 명확한 규정이 없어 벌어진 일이었다”며 “이를 명확히 하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차진아 고려대 교수는 “예외적인 상황에 비상적 수단으로 사용돼야 할 탄핵이 국회 다수당에 의해 오남용됐다”며 공직자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즉시 직무가 정지되는 헌법 65조 3항의 삭제를 주장했다. 국민의 참정권 확대 차원에서 국민발안제나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등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반면 한국 정치사에서 헌법 개정 논의의 부침을 직접 겪어본 여야 원로들 사이에선 권력구조 개편만 우선 처리하자는 주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설문에 응한 여야 원로 정치인 10명 중 7명이 ‘권력구조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개헌 과제는 많지만 본질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핵심인 권력구조 개편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헌법에 너무 많이 담으려 하다 보면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권력구조 개편 문제부터 합의점을 찾아 개헌한 뒤 차기 정부에서 그 외 사안들을 논의하는 방식이다.

국회입법조사처장을 지낸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는 “권력구조 외 다른 것들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개헌을 하기 싫어하는 것”이라며 원 포인트 개헌론에 힘을 실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