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개정 논의는 ‘1987년 헌법 체제’가 들어선 이후 정부마다 제기됐지만 국회 벽조차 한 번도 넘은 적이 없었다. 개헌 이슈가 여야의 정치적 상황이나 당리당략에 따라 활용되는 측면이 강하다 보니 실재화까지의 동력을 얻지 못한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3당 합당’ 과정에서 내각제 개헌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 각서가 언론에 보도됐고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가 자신의 대선 출마를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문건 유출이라 반발하며 개헌이 무산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뒤엔 임기 내내 개헌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와 ‘DJP연합’으로 단일화하며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지만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유보했고 이후론 논의가 탄력을 받지 못했다.
노무현정부 이후 개헌 논의는 각 당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부침을 반복하는 성격이 더 짙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하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그러나 야당은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카드로 개헌을 꺼냈다고 봤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판한 것을 기점으로 논의는 급속히 가라앉았다. 역시 4년 중임제를 공약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차기 집권이 유력했던 친박(친박근혜)계의 반대에 개헌 드라이브를 걸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는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했지만 당선 이후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인다”며 입장을 바꿨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최서현씨 개명 전 이름) 게이트’가 본격화되던 2016년 10월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돌연 임기 내 개헌 추진을 제안했지만 곧 탄핵 국면에 돌입하면서 개헌론도 자취를 감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인 2018년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발의했다. 같은 해 6월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내세웠던 자유한국당은 “청와대발 관제 개헌”이라며 강하게 반대했고,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의식한 야당의 정략적 반대라고 비판했다. 결국 개헌안은 여야 합의 없이 본회의에 상정돼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됐다.
현재 상황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국민의힘의 개헌 주장은 탄핵 정국 ‘물타기’ 목적에서 꺼낸 카드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차기 대권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자 개헌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개헌 논의의 장이 정략적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계엄 사태를 통해 현행 대통령제 헌법에서 나올 수 있는 나쁜 부분이 모두 나왔고, 이를 보완해야 한다”며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후에는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해 개헌 국민투표 시점을 정하고, 차기 정부가 이를 따르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미래의 문제인 개헌이 과거에 대한 심판 문제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재명 대표 재판에 발목 잡혀선 안 된다”며 “정치권은 사법 문제는 헌법재판소와 법원에 맡겨두고 미래를 위한 (개헌 등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