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마음 없앤다고 악 쓰지 마라

입력 2025-01-10 00:01
게티이미지뱅크

책은 비유로 시작한다. 꽃으로 가득 찬 푸른 정원이 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는 매일 열심히 일해야 한다. 특히 잡초에 신경 써야 한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어느새 잡초로 무성해진다. 언제 정원을 장악할지 모른다. 그러니 뽑아내야 한다. 정원은 우리의 삶이다. 잡초는 분노와 시기, 앙심, 경멸 등 ‘나쁜 감정’이다. ‘잡초’는 제거하거나 통제해야 할 대상이다. 최고의 정원은 잡초가 없는 정원이고, 최고의 삶은 나쁜 감정이 없는 삶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갖고 살아온 사고방식이다. 책은 통념을 깨뜨리기 위해 쓰였다.

저자는 나쁜 감정을 잡초가 아니라 ‘지렁이’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흙을 조금만 파보면 나오는 지렁이는 대부분 사람이 역겨워한다. 생긴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꽃과 마찬가지로 정원의 일부다. 지렁이가 있다는 건 그만큼 정원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지렁이가 없어지길 바란다는 건 조화롭고 풍요로운 정원이 없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저자는 “정원을 있는 그대로 사랑스럽게 유지하고 싶다면 이 꿈틀이 주민을 받아들일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면서 “책은 지렁이를 사랑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나쁜 감정에 대한 변론이다. 우리는 감정을 통제하고 길들이려는 사람, 감정 성인(聖人)을 추앙해 왔다. 감정 성인이 되기도 어렵고 되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갈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건 틀렸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 감정 성인이 되길 원하면 안 된다”면서 “감정 성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건 인간성을 덜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철학자인 저자는 철학의 역사를 되짚어 감정 성인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감정 통제형’과 ‘감정 수양형’이다. 감정 통제형은 나쁜 감정은 정원의 잡초와 같아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 수양형은 나쁜 감정을 수양하거나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 통제형을 대표하는 인물은 스토아학파와 마하트마 간디 등이다. 이들은 애초 감정이란 우리를 무너뜨리는 비이성적인 힘이라고 본다. 내면의 평온함, 마음의 평화, 자유를 얻으려면 삶에 대한 집착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음 챙김’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저자는 “이들은 인간사에 혼란스러움에 휘말리지 말도록 설득하고 있지만 그 혼란은 바로 당신의 삶”이라며 “혼란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은 인간성을 버리려고 힘쓰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감정 수양형은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자 등이 대표한다. 감정은 적절히 개입하면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길들이려 한다. 공자에 따르면 인자(仁者·마음이 어진 사람)는 증오를 완전히 삼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을 증오하도록 자신을 단련할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성품의 탁월성’을 중시하면서 감정을 조절하고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으로 설명한다.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아예 제거하라는 것보다는 낫지만,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긍정적인 감정만 인정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죄악시한다. 저자는 “부정적인 감정은 독소나 독약이 아니다. 그걸 극복한다고 해서 더 큰 사람이나 더 나은 사람이 되지도 않는다”면서 “그런 감정에 따라 행동하면 안 되는 이유는 많지만 그렇다고 그런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우리가 나쁜 감정에 대해 의심하는 이유는 ‘감정의 이중 잣대’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너무 깊이, 너무 빠져들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기쁨이나 감사함을 느끼는 것을 경고하는 사람은 없다. “사랑 때문에 집착하고 어리석게 굴면서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랑을 불건전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왜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찾아야 하지만 사소한 것에는 화를 내서는 안 되느냐”고 반문한다.

책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12명의 철학자를 등장시키며 분노, 시기와 질투, 앙심, 경멸 등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상세한 변론을 다룬다. 부정적인 감정의 특징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내 삶을 방해해서 분노하는 것은 내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이나 민주주의 파괴 행위에 분노하는 것과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가 새치기를 당해 화를 내는 것은 차이가 없다. 저자는 “(화를 낸다면)당신은 자신의 삶을 지루하고 사소한 부분까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라면서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분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괴물이 될 수 있다. 여성과 연애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온라인 그룹 ‘인셀(incel)’이 여성을 향해 테러를 저지르는 것에서 괴물이 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분노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분노를 정당화하고 악당(여성)을 탓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해야 한다. 저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고 마음을 연다. 내면의 야생(부정적 감정)을 같은 방식으로 사랑해 보면 어떨까.”

⊙ 세·줄·평★ ★ ★
·분노 시기 경멸은 뽑아내야 할 정원의 잡초가 아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려 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지렁이를 사랑하고 악마들과 함께 춤을 추자

맹경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