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배달시장, 수수료율 개편 아직도 덜컹덜컹

입력 2025-01-09 04:10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여론을 달궜던 배달시장은 해가 바뀌어도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배달 플랫폼 중개 수수료 상생안이 어렵사리 마련됐지만 시행까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형국이다. 배달 플랫폼은 중개수수료를 차등 적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생안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계속된다. 탄핵정국 속 정부의 후속 조치가 미진하자 정치권에선 상생안과 별개로 수수료 부담 완화와 관련해 논의하는 움직임도 나왔다.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엉키면서 배달시장은 혼돈에 빠져있다.

상생안은 어떻게 나왔나

최근 몇 년 동안 배달 플랫폼이 과도한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배달플랫폼은 수익을 내는데 이중가격제를 적용하면서 수수료 논란이 소비자에게까지 번졌다. 외식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서라도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렇게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가 출범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7월 배달의민족·쿠팡이츠·요기요 등 배달 애플리케이션 3사, 공공 배달앱 땡겨요와 함께 4개 소상공인 단체를 모아서 만들었다.


이들은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총 12번의 회의를 진행한 끝에 지난해 11월 상생안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부터 3년간 입접업체를 매출액 기준 4개 구간으로 나눠 중개수수료와 배달비를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냈다. 현행 9.8%(배민·쿠팡이츠)인 중개수수료를 입점업체의 거래액에 따라 최저 2%에서 최고 7.8%까지 차등 적용하는 형태다. 거래액이 많은 상위 35%까지는 수수료율 7.8%를 적용하고 35~80%는 6.8%를 받는다. 거래액 하위 20%의 영세 입점업체엔 중개수수료 2.0%를 적용해 비용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현행 1900~2900원인 배달비는 일부 올렸다. 거래액 50~100% 업체엔 현행과 동일하게 1900~2900원을 적용하고 상위 35%까지는 500원, 30~50%까지는 200원 인상한다.

요기요는 다른 길을 간다. 이 상생안을 적용하는 대신 중개수수료를 12.5%에서 9.7%로 인하했다. 포장주문에 대한 중개수수료 역시 12.5%에서 7.7%로 내렸다. 요기요는 늘어난 주문 수에 대해 중개수수료를 배달은 최저 4.7%, 포장은 2.7%로 인하하는 방안도 시범운영 중이다.

배달 플랫폼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기업으로선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가면서 영세 자영업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수수료율을 조정했고, 입점 업체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꾸준한 소통을 통해 할 수 있는 한 양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점업체끼리도 반응이 엇갈렸다. 소형 점포와 대형 프랜차이즈 업주 간 의견 충돌이 생긴 탓이다. 상생안에 따르면 매출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므로 주로 매출 상위권에 포진해 있는 프랜차이즈 업주들은 수익 구조 변화상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배달 플랫폼이 영세 업장의 부담을 덜면서 플랫폼 기업의 이익을 줄이는 대신 다른 자영업자에게 부담을 떠넘겼다는 지적이다. 반면 소형 점포 점주들과 전통시장 상인들은 경영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일단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

최종 상생안 도출 당시에도 소상공인연합회·전국상인연합회와 중재 역할을 맡은 공익위원은 상생안에 찬성했다. 한국외식산업협회·전국가맹점주협의회는 이에 반대하며 회의에서 퇴장할 정도로 협의 과정이 원만하지 못했다. 갈등의 불씨가 살아있는 셈이다.

상생안 시행에 변수 등장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상생안인 만큼 배민과 쿠팡이츠 모두 올해 초 안으로 상생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정국에 접어들면서 상생안 도입 동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배달 플랫폼들은 준비에 분주하다.

배민은 이달 안에 세부 정책을 마련해 발표하고 다음 달 중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상생안 관련 배민 실무진은 정부와 소통을 이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쿠팡이츠는 아직 구체적인 배달 수수료율 기준을 정하지 못했다. 이번 상생안 시행의 핵심인 거래액 산정 기준 시점을 언제로 정할지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다만 쿠팡이츠 역시 속도감 있게 시행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변수는 정치권에서 나왔다. 정치권 일각에서 기존 상생안과 별개로 추가 논의기구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상생안에 반대하는 소상공인 단체와 협의체에 참가하지 못했던 배달기사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한 새로운 협의안이 준비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상생안이 자영업자의 수수료 부담을 완화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고, 논의 과정에서 배제된 일부 단체의 얘기도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쿠팡 사장단과 간담회를 하면서 관련 논의에 들어갔다. 이들은 수수료 부담 완화와 함께 배달앱 거래 관행 개선 등 방안을 모색해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배달 플랫폼들은 정치권의 압박에 난처해하고 있다.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가까스로 만들어 낸 상생안이 무용지물이 될까 봐 우려하는 모습이다.

무리한 상생안이었나

애초에 상생협의체가 성과를 내기 위해 ‘보여주기식 결론’을 도출해내는 데만 치중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빠른 해법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안건인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회·정치·학계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7월 상생협의체를 발족하면서 3개월 안에 결론을 도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팽팽한 의견 대립으로 상생안은 11월에야 나올 수 있었다. 정부는 상설기구를 설치해 배달 플랫폼업계가 상생안을 준수하는지 모니터링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이 계획 역시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적잖다. 다만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상생안의 수수료 인하 수준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관해 잘 알고 있다”며 “상생안이 원활히 이행되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상생안을 둘러싼 잡음은 계속해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배달업계 관계자는 “상생안도 분명히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다만 일부 단체들의 불만이 심한 상황에서 수수료율 대신 다른 방향의 혜택을 주는 식의 방법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공정위의 역할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