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의 명품 등 쇼핑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오픈런’이다. 세일 기간이나 물품 양, 입장 인원 수 등에 제한이 있어 매장이 열리는 순간 바로 입장하는 걸 말한다. ‘개장·열림’을 뜻하는 오픈과 ‘달리다·뛰다’가 합쳐진 한국식 영어 표현(콩글리시)이다.
이 오픈런이 서울의 한 마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사이 한옥이 오밀조밀 모인 예스러운 동네다. 조선시대 왕족, 양반, 관료들이 살던 곳이어서 한옥이 잘 보존돼 있다.
외지인 발길이 뜸해 조용하고 한적하던 동네가 북적이기 시작한 것은 ‘북촌 8경’ 등이 방송을 탄 뒤 이를 보고 찾아드는 관광객이 부쩍 늘어나면서부터다. 거주자는 6000여명인데 1000배에 해당하는 600만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핫 플레이스’가 됐다.
그 부작용으로 소음과 쓰레기가 넘쳐났다. 나아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의 대문을 허락도 없이 벌컥 열고 들어가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사진 촬영 등을 하는 등 ‘무례한’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마을은 외지인들의 거대한 놀이마당으로 변했고, 고즈넉한 삶을 위해 한옥을 택했던 주민들은 본의 아니게 ‘시끄러운 세상’에 내동댕이쳐졌다. 사생활 침해에 주민들의 불만은 점점 커졌다. ‘새벽부터 오는 관광객, 주민은 쉬고 싶다’며 시위도 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지속적인 에티켓 캠페인을 펼쳤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견디다 못한 일부 주민들은 집을 팔고 떠날 지경에 이르렀다. 2013년 8437명이던 주민은 2023년 6108명으로 줄었다.
이에 종로구가 칼을 빼 들었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북촌 특별관리지역 내 주거용 한옥 밀집지역 ‘레드존’의 관광객 방문 시간을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제한해 북촌 주민들의 정주권 보호에 나선 것. 군부독재 시절 잔재로나 여겨지는 야간 통행금지가 36년 만에 다시 소환됐다. 넉 달의 계도기간을 거쳐 오는 3월부터는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10만원을 물어야 한다. 이 때문에 오전 10시 이전에 모여든 관광객들이 오전 10시 정각이 되면 떼 지어 마을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새로운 풍경도 연출된다.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도 비슷하다. 감천문화마을은 2011년 도시재생 사업 일환인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음침한 골목길에 벽화를 그리고 빈집을 공공미술관으로 만들었다. 2011년 2만5000명에 불과하던 관광객이 2019년 300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시기 관광객이 주춤하는가 싶더니 코로나19가 끝나자 2023년 예전 수준을 회복해 2024년 11월 기준 266만명으로 올라섰다. 반면 주민 수는 2010년 3161명에서 2023년 1558명으로 반토막났다. 2022년 기준 감천문화마을 주민 1명당 연간 관광객 비율은 1122명으로, 이탈리아 베네치아 21명보다 53배 이상 높다고 한다.
이에 감천문화마을도 올해 조례 개정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와의 협의를 거쳐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되면 관광객 방문시간 제한이나 자동차 통제가 가능하다. 입장료를 징수할 근거도 생긴다.
한옥마을이나 문화마을은 외국인 관광객에겐 색다르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다. 주민이 떠나고 관광객만을 위한 마을이 돼선 안 된다. 주민, 관광객 모두 상생하고 고유의 관광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선 지혜가 필요하다. ‘관광허용시간제’를 확대 시행해 같은 시간대 출입 가능한 관광객 수를 조정하고, ‘사전 방문 예약제’를 정착해 적정 인원만 방문토록 제한하는 방안 등도 고려해 봄 직하다.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