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첫 장을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는 것으로 막을 열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79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은 슬픔이 대한민국을 강타했고, 그 충격은 사건이 발생한 뒤 열흘을 보낸 지금도 국민들 마음에 생생하다. 동시에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내가 마주한 일상에 매몰돼 있으면 아무리 큰 사회적 아픔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재난영화의 한 장면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말이다.
“아빠. 너무 아쉬워요.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지난달 30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은 깊은 한숨과 함께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겨울방학을 앞두고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버스킹 무대를 펼칠 계획이었다. 시간을 쪼개 친구들과 만나 공연을 기획하고 합주를 연습하던 아이에겐 기대와 열정이 가득 차 있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전학을 가는 단짝 친구도 여럿이었던 터라 마지막 추억을 만들고 싶은 간절함 또한 컸다. 그러나 여객기 사고 소식과 함께 연말연시를 국가애도기간으로 보내게 되면서 공연은 취소되고 말았다.
아쉬움에 고개를 떨군 아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지금은 우리가 추억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기보다 아파하는 분들을 기억하며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인 것 같아.” 아이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저녁 식탁에서 마주한 아이 얼굴엔 하루 사이 없었던 미소가 번져 있었다.
“아빠. 담임선생님도 같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친구들도 같은 마음이었나 봐요.” 베이스에서 테너 톤으로 올라선 목소리, 근심 대신 환심(歡心)이 느껴지는 몇 마디 안에 학교에서 나눴을 대화와 상황들이 그려졌다.
참사 이후 무안공항 대합실엔 유가족 800여명의 숨이 머물렀다. 그들 곁엔 ‘마지막 한 분까지 외롭지 않게 곁에 있겠다’는 마음으로 전국에서 모인 1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숨 가쁘게 공항 곳곳을 오갔다. 장사를 접은 채 푸드트럭을 끌고 와 유족과 추모객에게 커피와 차를 대접한 청각장애인 부부, 추운 날씨에 컵라면과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전복죽과 곰탕을 만들어 건넨 명장 셰프, 밤새워 일일이 유족 텐트를 돌며 손수건을 전하고 쓰레기를 치우던 시민들. 이들이 보여준 모습의 바탕엔 이웃의 아픔을 향한 공감이 있었고, 공감을 동력으로 한 섬김은 사회적 연대를 이끌었다.
이 시대의 육아에서 강조되는 ‘공감과 존중’은 단순히 아이를 훈육하는 방식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이웃과 함께 아픔을 나누는 태도로 확장된다. 성경은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신다”(시 34:18)고 위로하며, 크리스천들에게 “너희가 서로 짐을 지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고 제시한다. 이를 묵상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길 때 일상의 다양한 순간에서 사랑과 회복이 구현된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자신의 작은 기쁨을 양보하는 마음 또한 그 과정의 필수요소다.
여객기 참사와 같은 대형 재난이 아닐지라도, 우리 이웃은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는 건 거창한 행동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그저 진심 어린 공감, 자신의 행복을 잠시 내려놓는 작은 양보에서 비롯된다. 이는 우리의 삶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웃의 짐을 나눠 지는 연대의 출발점이다.
참사 이후의 시간은 우리에게 비극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희생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운다. 애도와 공감으로 새해를 시작한 시민들은 이 비극이 단순히 한 시기의 슬픔으로 그치지 않고, 건강한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소망을 품고 있다. 그 소망을 현실화하기 위한 결단과 행동을 기대해 본다.
최기영 미션탐사부 차장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