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파생한 유명 표현 가운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 6:3)이 있다.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는 ‘약속의 땅’을 비유할 때 흔히 쓰인다. 여기에서 젖과 꿀은 현대인의 일상에 들어와 있는 ‘우유’와 ‘벌꿀’을 뜻하는 것일까.
미국 신학자이자 전직 목회자인 저자는 이 표현의 주인공이 ‘응고된 낙타 젖’과 ‘대추야자 시럽’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1년여간 거주 경험이 있는 그는 해당 지역 기후와 역사학, 고고학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젖은 소나 염소, 양이나 낙타 젖이 발효된 ‘치즈 형태의 요구르트’를 의미한다고 봤다. 또 가나안 땅 인근의 요단강 근처에 대추야자가 널리 분포해온 걸 감안해 ‘꿀’은 야생 벌꿀보다 대추야자 시럽일 가능성을 크게 쳤다.
미국서 2017년 출간된 이 책은 예수가 생존했던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물과 기후, 일상과 시대 배경을 25가지 주제로 압축해 정리한 그림책이다. 원서 부제에 ‘1세기 일상에 관해 호기심 많은 어린이를 위한 가이드’란 표현이 있긴 하지만 수록된 글이나 정보의 양을 고려하면 전 세대를 대상으로 한 ‘인포그래픽(infographics) 책’에 가깝다. 1세기 신약 시대의 일상을 조망토록 돕는 25개의 주제에는 당대 ‘주거 생활’ ‘의복’ ‘노동 생활’ ‘사회 구조’ ‘로마의 통치 체계’ ‘산헤드린 공회’ 등이 포함됐다.
이중 ‘노동 생활’에선 노동자의 90%가 농·어업과 관련 있던 고대 팔레스타인인의 평범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 인근의 길릴리 호수는 잡은 물고기를 가공해 판매하는 일종의 대규모 식품 수출 산업 단지였다. 성경 이외의 1세기 전후 기록 가운데는 “갈릴리 호수에 띄워진 배가 하루 200여 척에 달한다”는 내용도 있다. 특히 인근 소도시 ‘막달라’는 갓 잡은 정어리의 보관과 판매를 위해 이를 절이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정어리는 틸라피아와 함께 담수호(淡水湖)인 갈릴리 호수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어종이었다.
언덕에서 양과 염소를 치는 목축은 이 시대 하층민의 주요 소득원이었다. 유목민인 베두인이 지주의 양과 염소를 대신 관리해주곤 했는데 이들은 세간에서 ‘특별한 기술도 없는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곤 했다. 그러나 예수는 평범한 이들이나 사회적 약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업이나 목축 관련 비유를 자주 사용했다. 저자는 “예수는 일상에서 접하는 대상을 활용해 하나님을 설명했고 청중은 이러한 주님의 의도를 파악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 과정에서 잊혀지고 무시당하는 사람을 돌보며 권력과 영향력에 대한 생각을 뒤집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임을 보여줬다”고 부연했다.
책은 유대인을 둘러싼 역사와 시대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도 제공한다. 현시대의 ‘대법원’으로 통하는 ‘산헤드린 공회’의 조직도와 구성, 논의 주제 등을 다루며 당시 유대 사회 작동 원리를 설명한다. 아울러 로마법과 유대법을 비교해 예수가 왜 ‘신성모독’과 ‘반란’ 2가지 죄로 처벌받아야만 했는지도 직관적인 그래픽과 함께 설명돼 있다.
“예수는 역사의 특정한 시간 동안 구체적인 장소에서 살았던 진짜 사람이었다”는 저자의 표현대로 책은 1세기 팔레스타인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성서학 박사인 역자의 매끄러운 해석과 책 말미의 추가 해설도 이 책의 강점이다. 읽다 보면 “여러 세대가 함께 읽을 수 있고 성경의 시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완벽한 책”이란 미국도서관협회 서평지 ‘북리스트’의 평이 과찬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