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한가운데 길을 찾아”

입력 2025-01-10 00:30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사이 없음’이다. 모두가 정의를 말하지만 서로 다른 정의를, 모두가 진실을 외치지만 서로 다른 진실을 절규한다. 이렇게 인간 사이의 관계는 단절되고, 공동체의 유대는 무너지며,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극단의 대립만 난무한다. 정치와 경제, 지역과 계층을 가로지르는 양극화는 이제 거대한 화약고가 돼 우리 앞에 놓였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피스 라인’은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를 가르는 장벽이다.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면서도 서로 적대시했던 긴 갈등의 역사는 신념이 어떻게 증오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 역시 다르지 않다. 대립하는 이념의 두 강이 서로를 밀어내며 휩쓸고 간 자리에는 ‘사이 없음’이라는 가파른 절벽만 남았다. 보수와 진보라는 두 물줄기는 각자 정의를 외치지만 그 거센 물살 속에 우리의 인간다움은 침식돼 간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 목격되는 무수한 내로남불과 정쟁은 이 위기의 민낯을 드러낸다. 진영을 막론하고 상대의 허물과 과오가 드러날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를 의인으로 착각하는 오류에 빠진다. 하지만 톰 라이트는 “사람들은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단죄하며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려 한다”고 지적했다. 상대를 악마화해 얻은 정당성은 결코 진정한 공동선을 이룰 수 없다.

러시아의 양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수용소군도’에서 충격적인 진실을 밝혔다. 선과 악의 경계선은 정파나 이념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관통한다는 것이다. 그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면서 인간의 보편적 존엄을 잃지 않았다.

20세기의 신학 거장 폴 틸리히는 양극화된 갈등 속에서도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가는 하나님 나라’를 역사의 궁극적 목적으로 제시했다. 예수의 ‘비아 메디아’가 보여주듯 이는 단순히 갈등의 종식이 아니라 대립을 창조적으로 초월해 새로운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다. 틸리히가 말하는 ‘중간의 자리’는 극단 사이에서 창조적 균형과 조화를 모색하는 공간이다. 그는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린다고 봤다.

이는 결코 무기력한 타협이나 미지근한 중도가 아니다. 그것은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되 증오와 적대를 거부하는 자리이며, 원칙을 지키되 대화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조차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를 잃지 않는 자리다.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는 것, 이는 진리 추구의 대전제이자 문명사회의 기본이다.

공자는 ‘중용’에서 “멀리 가려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걸어야 하고, 높이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낮아지려 하기보다 높아지려는 태도에 사로잡혀 있다. 보수·진보가 상생하는 정치를 이루지 못한 이유는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를 잃었기 때문은 아닐까. 서로를 가까이 품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돌아보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십자가의 길은 바로 이러한 낮아짐의 길이자 화해의 길이다.

오늘날의 양극화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되찾으라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시대적 신호다. 교회가 앞장서서 겸손하게 ‘사이’를 잇고 갈등을 화해로 전환하는 다리가 될 때 세상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는 인간애로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는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 온전하게 추구하는 길이다. 증오 없는 정의, 적대 없는 진실, 폭력 없는 변화를 향한 여정이야말로 우리가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 아닐까.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0)

송용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