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포털 댓글, 지금이 최선일까

입력 2025-01-11 00:38

“첫 번째 댓글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구독자 12만명 재테크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지인이 한 얘기다. 첫 댓글이 콘텐츠 내용이나 출연자에게 우호적이면 그 아래로 달리는 댓글도 결이 대체로 비슷하단다.

만약 부정적이라면? 그 아래로 달리는 두 번째 세 번째, 끝까지 부정적인 글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댓글의 힘이 이렇게나 강력하다. 과거 댓글부대가 괜히 운영됐겠는가. 다 효과가 있어서다.

우리 모두 주체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판단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포털에서 뉴스를 볼 때도 그렇다. 자신이 잘 알고 관심 있는 주제라면 술술 읽고, 원인 분석과 대안도 제시할 수 있겠지만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면 아래 세 단계로 뉴스를 읽고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①포털에서 눈에 띄는 제목을 클릭한다. ②첫 문단부터 읽어 내려간다. ③이해가 안 된다는 느낌이 들면 곧바로 화면을 맨 아래로 곧장 내려 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댓글부터 본다.

그 댓글은 복잡한 뉴스를 단 한 줄로, 게다가 기사에 나와 있지 않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인까지 간단하게 짚어낸다.

하지만 복잡한 우리 사회의 일을 그렇게 간단하게 짚어낼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기사를 읽었지만 누군가의 주장만 남게 된다. 짧게는 600자, 길게는 2000자에 이르는 분량의 글을 이해하고 또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기에는 우리는 유튜브 쇼츠(짧은 영상)에 너무 길들어버렸다.

우리는 얼굴도, 성도 모르는 모니터 너머 누군가가 단 한 줄의 댓글로 세상을 이해하는 일종의 ‘사고의 외주’를 주고 있다.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포털 뉴스에 달린 댓글을 남들보다 유심히 보게 된다. 댓글이 많이 달리면 좋다. 문제는 댓글의 질이다. 사실과 다른 내용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제대로 알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특정 지역과 성별,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담긴 댓글은 슬쩍 보고 넘기기 어렵다. 하루에만 수십 차례 마주친다. 진작에 폐기돼야 할 사고방식이 뉴스 댓글을 통해 생명력을 얻고 미래 세대에게 대물림된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걱정인 걸까.

한국 사회가 둘로 쪼개졌다. 사실 그렇게 된 지 오래됐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와 무안 제주항공 참사 이후 유독 심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심리적 내전’이라는 표현으로 현재 상황을 진단한다.

넓지도 않은 면적에(한반도 면적은 전 세계 84위다) 함께 붙어살면서 생각은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포털 뉴스 아래에 달리는 댓글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네이버 등 포털 뉴스 댓글은 이미 공론장의 역할을 하지 못한 지 오래됐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새로운 가치가 탄생할 수도 있다.

기사의 오류를 따끔하게 지적할 수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최근 이런 댓글은 거의 경험한 적 없다. 대신 누군가를 미워하고 적대시해 혐오하는 댓글은 차고 넘친다. 이러다가 우리나라가 정말로 둘로 쪼개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우울해진다.

지금의 뉴스 댓글은 득보다 실이 크다. 댓글 한줄 한줄이 쌓여 심화한 우리의 확증편향과 사회적 갈등은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책이 있기는 할까.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제 포털 뉴스 댓글도 운영 방식을 고민해봐야 할 때다. 네이버는 2020년 연예·스포츠 뉴스 댓글 기능을 없앴다. 악성 댓글로 고통받던 연예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에 나온 개선책 중 하나였다.

연예와 스포츠 뉴스 댓글 폐지 이후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 결과 이용자 70% 이상이 연예·스포츠 뉴스 댓글 폐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집계됐다.

댓글 제도를 없애자는 얘기는 아니다. 앞서 말한 유튜브를 운영하는 지인이 생각해낸 방법에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악성 댓글은 삭제될 수 있음을 공지한 후 첫 댓글이 ‘선을 넘는다’ 치면 곧바로 지워버린다.

지금 포털은 이렇게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희생되면 그제야 바꿀 것인가. 지금 방식이 최선일 리 없다.


이광수 경제부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