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했던 여권의 대선 ‘잠룡’들이 최근 야당과 헌법재판소를 겨냥해 날 선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윤 대통령과 친윤(친윤석열)계를 겨눈 쓴소리는 자제하려는 기류도 엿보인다. 헌재의 탄핵심판 인용 시 바로 막이 열리는 조기 대선 상황을 상정하고 보수 지지층 확보전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7일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이 윤 대통령 탄핵안에서 내란죄를 제외하려는 것에 대해 “헌법을 정치 흥정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일”이라며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범죄 피고인 이재명 대표의 대선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흑수’(黑手·음흉한 수단)를 뒀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앞서 지난 5일에도 “위기 상황일수록 절차적 정당성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싼 적법성 논란을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
여권에서 윤 대통령을 가장 강하게 비판해온 유승민 전 의원도 최근 헌재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국회 탄핵소추단 측 대리인이 지난 3일 ‘헌재가 형법상 내란죄를 탄핵 사유에서 빼도록 권유했다’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이 된 점을 거론하며 “재판관들이 (반박하지 않고) 왜 가만히 있느냐. 그러니까 (헌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 5일 페이스북에서도 “헌재가 이 대표 조기 대선을 위해 복무한다면 특정 정파의 부역자라는 오명을 쓰고 언젠가 해산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탄핵안과 특검법 등 표결에서 소신 행보를 보여온 안철수 의원도 최근에는 화살을 야당 쪽으로 돌리고 있다. 안 의원은 지난 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은 총만 안 차고 군복만 안 입었을 뿐 입법부를 장악한 점령군처럼 대한민국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집결한 여당 의원들에 대한 평가를 묻는 말에는 “갈등의 현장에서 직접 민심을 파악하는 게 국회의원의 중요한 책무”라며 말을 삼갔다.
탄핵에 찬성했던 여권 잠룡들의 기류 변화에 대해 한 여당 의원은 “야당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헛발질이 자초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헌법재판관 2명 추가 임명으로 탄핵심판이 정상 궤도에 오르면서 여권 차기 대권 주자들도 조기 대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당의 대선 주자 지위를 얻으려면 당원과 지지층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고, 대야 투쟁력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탄핵 인용과 조기 대선이 현실화할 경우 우선 의원들 지원을 받아야 하니 내부 의원들을 비판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여당 관계자는 “탄핵 찬성으로 드리울 배신자 프레임을 야당에 맞설 적임자로 치환하기에 (대선 주자들에게)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