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혐의로 고발된 이상민(사진)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재임 당시 대통령경호처가 지급한 비화폰(보안 휴대전화)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 조지호 경찰청장 등 비상계엄 사태 핵심 피의자들이 비화폰으로 계엄을 모의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이 전 장관 비화폰에 관한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7일 행안부로부터 확보한 ‘장관에게 지급된 비화폰’ 자료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재임 시절 경호처에서 비화폰 1대를 지급받았고, 장관 사임 후 경호처에 반납했다. 역대 행안부 장관 중 비화폰을 쓴 사람은 이 전 장관뿐인 것으로 파악됐다. 행안부는 계엄 전에는 장관 비화폰 존재를 몰랐고 사임 후 비서실을 통해 뒤늦게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이 전 장관이 어떤 목적으로 비화폰을 썼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로 정부 출범 때부터 행안부 장관을 맡은 최측근이다. 다만 이 전 장관은 “평소 계엄에 대해 생각이라도 했으면 계엄의 요건 등 공부라도 해뒀을 것”이라며 내란 동조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현재 이 전 장관 사건을 수사 중인 공수처는 이 전 장관이 반납한 비화폰을 확보하지 못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 전 장관에 대해 당연히 조사나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국민일보는 이 전 장관에게 수차례 연락해 비화폰 용도 등을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앞서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수사 과정에서 조 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비화폰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 청장은 지난달 3일 윤석열 대통령과 비화폰으로 통화하며 6차례 계엄 관련 지시를 받았다. 경찰은 조 청장이 지난해 8월 취임하면서 전임자로부터 비화폰을 물려받은 것으로 파악했다. 김 청장은 계엄 당일 오후 10시쯤 비화폰을 통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계엄이 늦어질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의 골프장 방문 보도 후 경호처에서 비화폰을 받았고, 계엄 후 반납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조 청장 등의 비화폰은 경찰청이 관리한 게 아니며 존재 여부도 몰랐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2014년 3월부터 주요 간부들에게 비화폰 76대를 지급해 관리했다. 지난 2023년 4월부터 모두 폐기하고 운용하지 않았다. 경찰청은 2023년 6월 국가정보원이 ‘비화폰 도입 계획’을 문의하자 “도입 의사가 없다”고 회신했다.
비화폰은 도·감청과 통화 녹음이 불가능하다. 경호처 비화폰의 통화내역은 통신사가 아닌 별도 경호처 서버에 저장된다. 지급 목적과 통화내역을 확인하려면 경호처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엄의 상당수 핵심 인물들이 비화폰을 사용해 사전 모의를 한 것으로 의심받을 만한 상황”이라며 “경호처에 협조를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원칙대로 적법 절차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현 김재환 신지호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