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7일까지 여섯 차례 국회에 불려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오 처장을 때로 독려하고 때로는 훈계하듯 하며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촉구했다. 오 처장이 “검토하겠다”고 답하면 의원들은 “공수처 앞날이 어두울 것 같다” “쫄지 말고 영장 들고 가라”고 힐난했다.
공수처가 검찰 특별수사본부로부터 사건을 이첩받고도 윤 대통령의 자진출석을 기다리자 언사는 거칠어졌다. 민주당의 박균택 의원은 “검·경이 잘하고 있던 수사를 공수처가 끌어와서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당신은 채 상병(해병대원 순직 사건) 수사 때도 ‘잘 알겠습니다’ ‘검토하겠습니다’(라고만 하고) 아무것도 안 했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체포 무산 이후엔 오 처장을 향해 “무능하다” “우유부단하다”며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검찰은 손 떼고 공수처로 사건을 넘기라”고 촉구했던 민주당이다. 사상 첫 현직 대통령 수사가 검·경·공의 중복 수사, 공수처의 사건 이첩 요구, 체포영장 발부와 집행 무산으로 흐르는 동안 공수처에 대한 야권의 태도는 응원에서 개탄으로 바뀌었다. 이를 보는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설계 당시부터 제기된 ‘정치의 사법화’ 등의 문제가 국가적 중대사에서 돌아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오 처장은 “공수처는 검찰, 경찰의 수사권·주도권 다툼에 대해 이첩요구권을 행사했고 또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으나 현재까지 결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은 집행 실패에 따라 오히려 아마추어적 무능력이 부각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수처는 공조 중인 경찰에 영장 집행을 지휘하려 했으나 정작 경찰이 반발했다. 법조인들은 “오점이 없어야 할 대통령 수사에서 논란을 자초했다”고 했다. 문재인정부 당시 65년 만의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사 지휘 폐지의 숙원을 이룬 경찰이 공수처 검사의 지휘를 따를 가능성은 애초 없었다.
수사를 받는 윤 대통령 측에서 “사법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린다”며 오히려 공수처를 질책하는 듯한 입장이 나왔다. 빌미를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정부 검찰 개혁의 양대 축이던 공수처의 출범, 그리고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수사 경험과 능력, 치밀한 준비와 토론으로 신중하게 한발 한발 디뎌야 하는데, 공수처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며 “밉더라도 검찰의 합동수사 요구에 응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의 공수처장에 대한 강한 압박과 이에 대해 오 처장이 “체포 검토하겠다” “출국금지 검토하겠다”고 답변하는 모습은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비춰 어색하다는 반응이 많다. 지난달에는 한 의원이 오 처장을 향해 “고개만 끄덕이면 속기록에 남지 않는다”며 윤 대통령 체포를 약속하는 ‘예’ 대답을 이끄는 장면도 연출됐다. 권력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란 속에서도 정치적 중립성, 직무상 독립성을 이유로 기존 행정조직에서 분리된 형태로 출범한 공수처였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의 경우 수사 중에는 총장이 국회에 나가는 일도 없다”며 “수사와 관련한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정치권의 과도한 채근과 공수처의 역량 부족이 맞물린 결과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또 다른 소모적 억측과 갈등이다. 국민의힘이 추천했던 오 처장이 윤 대통령을 봐주려고 했다느니, 검찰이 공수처에 사건을 이첩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느니 하는 말들이다. 오 처장은 괴로운 표정으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공수처장의 타 수사기관에 대한 사건 이첩 요구는 해당 수사기관이 응해야 하는 의무 규정이며, 검찰 특수본 내부에서는 사건 이첩 당시 반발 기류가 있었다.
정치권이 수사기관을 독려하다 이내 비난으로 갈아타는 일은 검찰에 이어 ‘촛불의 명령’ 공수처를 두고도 반복되고 있다. 공수처가 애초부터 정치적 목적과 결부돼 설계된 한계를 갖고 있었으며, 그 수업료가 하필 역사적 사건 속에서 청구됐다는 말도 나온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과거 공수처 출범 때 “검찰 개혁을 바라는 순수한 국민적 열망과 검찰에 대한 집권세력의 증오가 만났다”며 “필요하지만 시기적으로 잘못 우리에게 왔다”고 평가했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2021년 1월 김진욱 전 공수처장이 취임했을 때 “공수처와 저희 민주당은 협업 관계”라고 했다. 하지만 공수처에서는 정치권이 정작 안착을 위한 제도적 후속 조치에는 게을렀다는 항변이 종종 나왔다. 수사 대상자와 대상 범죄의 조정, 수사 전념이 가능한 인력 구성, 구성원에 대한 신분 보장 등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인력 이탈에 따른 역량 부족을 마냥 기관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시각도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고위공직자와 하위직 공무원이 공범 관계에 있을 경우, 고위공직자와 민간부문이 비리로 얽힐 경우 공수처와 타 기관이 어떻게 나눠 수사하며 언제 이첩하는지 등의 ‘난제’도 여전하다.
지난달 검찰과 공수처는 비상계엄 사태 피의자들의 구속 기간을 최대 20일로 하고 10일씩 나눠 쓰기로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가 검찰이 공소제기하는 사건을 이첩받아 구속 수사할 경우 그 기간이 10일인지 1회 연장해 20일인지, 이후 검찰도 또다시 구속 기간을 가질 수 있는지 누구도 말하지 못했었다. 인권 수사를 부르짖는 정치권이 만든 공수처법에 정작 인신구속 기간과 관련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