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미국산 원유 물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유 도입처 다변화를 유도하는 정부의 지원책 효과가 작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미국산 원유 수입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7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미국산 원유 수입 물량은 1억5629만 배럴로 12월을 제외하고도 2023년 전체 도입량(1억4237만 배럴)을 넘어섰다. 수입액도 133억2623만 달러(약 19조3060억원)로 2023년(12조4591만 달러)을 웃돌았다. 전체 수입 물량 중 미국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6.5%로 2023년(14.2%)보다 2.3% 포인트 증가했다. 최대 원유 수입국인 사우디아라비아(31.6%)와의 점유율 격차는 15.1%포인트로 좁혀졌다. 2020년에는 22.5%포인트였던 점유율 격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미국산 원유 가격 경쟁력은 중동산보다 떨어진다. 지난해 미국산 원유 수입 단가는 배럴당 평균 85.26달러로 중동의 사우디(83.82달러), 아랍에미리트(84.57달러), 이라크(79.87달러)보다 비싸다. 미국산 원유는 중동산 원유에 특화된 국내 정유 설비 특성과 높은 운송비 영향으로 2016년까지만 하더라도 수입 비중이 0.2%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산 원유는 관세가 붙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중동산 원유와 달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3%의 관세가 면제된다. 여기에 미국이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인 2018년 이후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으로 부상하면서 한국도 통상 압박에 따라 미국산 원유 수입을 대폭 늘렸다.
정부 지원책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원유 도입처 다변화 지원 제도’를 통해 운송비가 높은 미국산(배럴당 약 4달러) 등을 수입할 경우 운송비가 낮은 중동산(약 2달러)과의 차액 일부를 보전해준다. 석유화학업계는 이같은 지원과 관세 효과를 감안하면 미국산 원유가 중동산 원유에 비해 약 1달러가량 경제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관세 장벽’을 세우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가 무역수지를 관리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미국산 원유 비중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는 미국으로 수출 기조는 이어가되 수입을 늘리는 방향으로 무역수지(수출액과 수입액의 차이) 흑자를 줄이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제3국으로부터 수입을 줄이고 미국에서 수입을 늘릴 만한 품목으로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가 거론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내 정유 4사를 대상으로 원유 도입 현황을 파악하는 한편 미국산 원유 수입 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동 국가들의 반발 가능성은 위험 요소다. 사우디는 최근 정부의 원유 도입처 다변화 지원 제도에 대해 부당한 지원이라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눈치를 보면서 건설업 등에서 중동 국가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셈법이 복잡해 보인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