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개봉한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에서 송중기(사진)는 IMF 직후 콜롬비아로 이민을 떠나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물 국희를 연기했다. 보고타에 처음 도착했을 때인 10대부터 한인 사회의 중심인물로 성장한 30대까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밀수업을 하는 한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송중기는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송중기는 영화를 처음 만난 당시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민망했다. 국희의 20대 초반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제안을 받았을 때 이미 서른다섯 살이었다”며 “그러다 ‘더 나이 들면 이런 제안이 오지도 않을 테니 아직은 할 수 있을 때 풋풋한 연기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다”고 돌이켰다.
파란만장한 인물에 대한 긴 서사를 담는다는 점이 ‘보고타’의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송중기는 “어린 국희와 30대 중반에 완벽히 콜롬비아에 정착한 국희의 대조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배우로서 욕심나는 지점이었다”며 “국희의 철학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믿으라’다. 생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가족을 비롯해 자기 사람들을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책임감에 대한 영화”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선보이는 소감은 남다르다. 코로나19 때문에 촬영이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탓이다. 콜롬비아 현지 촬영을 떠난 건 2019년 12월의 일이다. 5년이 지나서야 개봉하는 셈이다. 송중기가 드라마 ‘빈센조’와 ‘재벌집 막내아들’, 영화 ‘화란’ ‘로기완’ 등 여러 작품으로 대중을 만날 동안 영화는 답보 상태였다.
캐릭터의 겉모습은 최대한 현지인과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난생처음 귀도 뚫어보고 화려한 색상의 옷을 걸쳤다. 송중기는 “장신구를 몸에 착용하는 걸 즐기지 않는데 현지에 답사를 가보니 많은 남성들이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분장팀, 의상팀과 이런저런 상의를 하다가 귀를 뚫게 됐다”며 “무지개색 옷도 그곳 사람들의 스타일을 따라갔다. 실제로 화려한 오리털 패딩 등이 잘 팔린다더라”고 이야기했다.
‘빈센조’에서 이탈리아어 연기를 선보인 송중기는 ‘보고타’에서 스페인어 연기에 도전했다. 그에겐 콜롬비아 출신 장모님과 스페인어에 능통한 아내가 있다. 송중기는 “국희가 콜롬비아에 잘 안착해서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 많았다. 대사에 현지인처럼 비속어가 자연스럽게 섞이기도 했다”며 “스페인어를 재미있게 배우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났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겁내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어가 무서웠으면 지금의 아내도 못 만났을 것”이라며 웃었다.
영화 개봉을 한 달여 앞두고 송중기는 둘째 딸을 얻었다. 그는 “아이가 둘이 되니 기쁨이 두 배가 아니라 200배는 되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딸을 안을 때의 느낌이 아들과 또 다르다. 충만하게 지내고 있다”며 웃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