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해처럼 맑은 얼굴

입력 2025-01-08 00:35

우중충한 날씨와 찌뿌둥한 몸 때문에 자꾸 기분이 처지던 차였다. 톱질과 망치질, 목공 기계의 거친 소음이 일상인 작업실에 어린이의 앙증맞은 음성이 짜랑짜랑 울려 퍼졌다. 오디오에서 멋대로 흘러나오는 동요는 뜻밖의 분위기 전환을 가져왔고 어쩐지 그게 싫지 않았다. 아기 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노는 동요를 흥얼거리다 작정하고 큰 목소리로 따라불렀다. 작업실에는 온통 귀 없는 사물뿐이라 동심에 흠뻑 젖어도 민망할 일이 없었다. 되려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다 해처럼 맑은 얼굴이라는 가사에 꽂히고 말았다.

‘참 아름다운 표현이다.’ ‘요즘 보기 드문 얼굴이지.’ ‘세상살이가 팍팍하니 그럴 만도 해.’ 잡다한 생각에 빠졌다가 근래에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둘 떠올렸다. 집들이에서 나를 반기던 친구의 얼굴이 봄날의 볕처럼 따스했고, 동창에게 구하기 어렵다는 케이크를 건넸을 때 그녀의 얼굴은 빙그레 웃음으로 빛났다. 오랜만의 가족 식사 자리에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 부모님의 얼굴도 생각났다. 차창에 스치는 풍경처럼 무심히 지나쳤던 순간들이었지만, 모두가 밝은 얼굴이었다. 함께했던 나의 마음도 덩달아 맑아졌던 것 같다. 그들이 가진 맑은 기운이 행동과 말투로 자연스레 흘러나와 주변까지 정화했던 게 분명하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해처럼 맑은 얼굴을 가진 사람인가. 어떤 눈빛과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나. 팍팍한 일상과 자잘한 고민 속에서 내 얼굴은 자주 흐리고 피곤해 보였을 테지. 어쩌다 내 마음은 맑음을 잃었나.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근심 걱정 속에서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기란 참 어렵다. 하지만 동요 한 자락에 떠올린 몇몇 얼굴처럼 선한 눈빛으로 미소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하지 않던가. 거울을 보며 광대까지 입꼬리를 끌어올려 본다. 내일은 해처럼 맑은 얼굴로 세상을 마주하리라.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