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식 수사 집착… 尹 불응 빌미만 만들어준 공수처

입력 2025-01-07 03:49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업무를 경찰에 일임한다는 공문을 보냈다가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 “향후 공조수사본부 체제하에 잘 협의해 (체포영장) 집행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6일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경찰에 맡아달라 했다가 번복한 것을 놓고 법조계에선 대형 수사 경험 부족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체포영장 집행에 버티기로 일관하는 윤 대통령 측 책임이 크지만 공수처가 불필요한 수사력 논란을 자초한 탓이다. 공수처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영장을 제대로 집행하기보다 경찰에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법조계에선 그간 공수처가 차분히 수사 단계를 밟기보다 보여주기식 수사로 윤 대통령 측에 수사 불응 명분만 만들어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지난달 11일 국회 질의에서 윤 대통령 체포 여부를 묻자 “긴급체포 또는 체포영장을 시도하겠다”고 답했다. 공수처는 지난달 30일 윤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 청구 사실도 공지했다. 밀행성을 요구하는 체포 단계에서 수사기관이 체포 의지를 드러내거나 영장 청구 사실을 공개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공수처는 대외적으로 체포영장 청구 사실을 알려 윤 대통령을 압박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체포영장 청구 및 발부 단계가 모두 공개돼 윤 대통령 측에 대응 논리를 갖출 시간을 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하자 윤 대통령은 즉각 수사권 및 관할권 문제를 제기하며 법원에 의견서와 이의신청을 냈다. 구속영장 청구 단계에서는 변호인이 관여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지만 체포영장 청구 단계에서 의견서를 내는 일은 상당히 드물다. 법원은 공수처의 수사권 및 관할권 논란에 대해 영장 발부 및 이의신청 기각을 통해 사실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이 공개 반박을 이어가고, 지지자들의 관저 앞 시위가 격화하면서 영장 집행은 점점 더 난항에 빠지고 있는 모습이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이번 사건처럼 논란이 예상되는 수사는 올바른 절차를 지켜 명분을 선점해야 한다”며 “철저히 밀행성을 지켜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들만의 계획대로 수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수처에는 영장 집행 전문성이 당연히 없다”며 “경찰의 장비, 인력, 경력 등 당연히 경찰이 최고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상 책임 회피성 발언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장 집행의 준비 부족도 지적된다. 공수처와 경찰이 지난 3일 투입한 인원은 약 120명으로 대통령경호처 인력 200여명에 한참 못 미쳤다. 이 차장은 “경호처가 협조해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지만 안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단 관저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식의 집행이었다”며 “과거 특검 수사 사례를 참고해 대통령 조사를 유도하는 전략도 같이 준비해야 했다”고 말했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물리적 충돌이 예상돼 체포영장 집행이 어렵다면 구속영장 청구로 압박하는 전략을 택했어야 했다”며 “아마추어같이 행동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공수처 설치로 인한 수사권한 문제가 윤 대통령 수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그간 우려했던 문제가 결국 내란 사건 수사에서 터져버린 것”이라며 “수사기관이 쪼개질수록 윤 대통령 같은 피의자에게는 유리하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거나 특검 출범으로 수사권을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재환 한웅희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