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문 이어 우표·달력서도 ‘주체연호’ 사라졌다

입력 2025-01-06 18:51
연합뉴스

북한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이어 새해 우표와 달력에서도 ‘주체연호’ 표기를 삭제했다. 선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독자 우상화 작업인 동시에 정상국가 이미지 구축에 부심하는 ‘김정은 시대’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우표를 독점 발행·유통하는 조선유통사가 지난 1일 제작한 새해맞이 우표 1종과 엽서 5종이 6일 공개됐다. 이번 우표와 엽서에서는 지난해까지 표기됐던 주체연호가 사라졌다. 주체연호는 김 위원장의 조부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연도 표기법이다. 1997년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과 함께 공식화돼 김일성 우상화의 의미도 담고 있다. 주체연호는 새해 달력에서도 삭제됐다. 앞서 지난해 10월 13일부터는 노동신문 1면 상단에 표기되던 주체연호가 지워졌다.

정부는 주체연호 삭제가 김정은표 독자 우상화 흐름의 연장선이라고 분석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기엔 선대에 의존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다가 이후 여러 가지 독자적으로 위치·위상을 강화해 나가는 일련의 흐름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그런 맥락에서 (주체연호 삭제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추정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지난해 김 위원장 얼굴이 새겨진 배지(초상휘상)를 간부들이 착용한 장면이 포착됐고, 김 위원장 초상화를 김일성·김정일 선대 초상화와 나란히 배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독자 우상화의 성격을 넘어 정상국가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김정은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조치라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도 그렇고 살아 있는 왕의 연호를 쓰지 죽은 왕의 연호를 쓰는 경우는 없다”며 “현대적인 정상국가 이미지를 지향하는 김정은으로선 봉건적 방식인 주체연호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일성 등 선대에 얹혀 살지 않고 온전한 김정은 시대를 본격적으로 알리겠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주체연호 삭제뿐 아니라 김 위원장이 새해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불참한 것이나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지 않는 것도 정상국가 이미지 구축에 불필요한 행위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은 본인이 계산했을 때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실질적인 이익을 추구한다”며 “주체연호 삭제는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김정은의 뜻이 담긴 것은 물론 (실익을 따지는 정상국가처럼) 실용주의적인 김정은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