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도가 애국·순교자로… 의회 폭동 4년 만에 뒤집어진 서사

입력 2025-01-07 00:00
미국 대선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인증하는 상하원 합동회의를 하루 앞둔 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주변에 설치될 보안 펜스가 의사당 앞에 옮겨져 있다. AFP연합뉴스

2021년 1월 6일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벌어진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의 난입·폭력 사태는 폭동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TV로 다 생중계됐고 논쟁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약 1600명 중 절반 이상이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200명이 수일에서 최대 2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트럼프의 정치 생명은 ‘1·6 의회 폭동’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4년 후 그는 의회 폭동의 날에 폭동의 현장에서 대통령 당선 승인을 받는다. 오는 20일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의회 폭동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 사면이 이뤄질 예정이다. 폭동을 사주한 혐의로 자신을 수사한 인사들을 고발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사랑의 날: 트럼프는 1월 6일의 폭력적인 역사를 어떻게 뒤집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지난 4년 동안 의회 폭동을 어떻게 세탁하고 음모론과 순교 이야기를 섞어 정치적 자산으로 만들어냈는지 보도했다.

폭동 다음 날 공화당 하원의원 맷 게이츠는 “일부 폭도가 트럼프 지지자로 가장했고 실제로는 테러단체의 일원”이라고 주장했다. 친트럼프 의원들은 2021년 봄과 여름 내내 폭동에 대한 의심과 음모론을 퍼뜨렸다. 앤드루 클라이드 의원은 의사당 난입을 “정상적인 관광객 방문”이라고 말했다. 폭스뉴스 진행자였던 터커 칼슨은 폭동이 연방수사국(FBI)의 위장 작전이었다는 놀라운 주장을 펼쳤다. 그는 의사당 공격이 정부의 음모라는 주장을 확장한 다큐멘터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한동안 침묵하던 트럼프는 그해 3월 말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1·6 사태를 두고 “대체로 평화로웠다”며 의사당을 습격한 군중이 경찰에 의해 ‘인질’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해 여름 플로리다주 집회에선 경찰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 폭동 가담자 애슐리 밥빗의 이름을 거론하며 순교자처럼 묘사했다.

2022년 6월 하원 청문회가 시작되자 트럼프는 연설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1·6 사태는) 조작되고 도난당한 선거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2023년 3월에는 의회 폭동으로 수감된 약 20명의 남성들이 국가를 합창하고 여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모두를 위한 정의’라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NYT는 트럼프가 의회 폭동을 부정하기 위해 부정선거 주장을 퍼뜨리고, 정부가 사주했다는 음모론을 암시하고, 가담자 기소를 박해라고 주장했다며 “그렇게 의사당을 공격한 사람들은 정치범, 인질, 순교자, 애국자가 됐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6일 WP 기고에서 “1월 6일의 역사를 다시 쓰거나 심지어 지우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는 매년 이날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오르고 승리한 날을 기억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는 미국에서조차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주문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