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탄 술을 먹여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47)씨가 사건 발생 2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재판장 박현수 지원장)는 6일 김씨의 존속살해·사체유기 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김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가 구속된 지 24년, 재심 개시가 결정된 지 9년여 만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수사기관에서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한 진술조서를 부인하는 만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김씨는 다른 동기로 허위 자백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김씨의 자백을 들은 친척과 경찰관들의 진술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2000년 3월 7일 새벽 4시쯤 전남 완도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남성 A씨(당시 52세)가 숨진 채 발견되자 수사를 벌인 경찰은 사건 발생 하루 만에 A씨의 첫째 딸인 김씨(당시 23세)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과 이복 여동생을 성추행한 친아버지의 9억원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수면유도제가 든 술을 마시게 해 살해한 뒤 교통사고처럼 꾸몄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특히 김씨의 고모부가 경찰에 ‘이복 여동생을 성추행한 데 앙심을 품고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신에게 말했다’며 김씨를 용의자로 지목한 데 이어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김씨가 같은 해 1월 아버지 명의로 9억원대의 상해·생명보험 7개에 가입한 사실을 확인하며 범행 동기가 충분하다고 결론내렸다. 김씨는 체포 직후 수사기관에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되자 김씨는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번복했다. 김씨는 “이복 남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했을 뿐이지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 명의로 가입한 보험 중 상당수는 이미 해약됐고 나머지 보험도 가입 2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데 이어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무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김씨에게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가 위법하고 강압적이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영장 발부 없이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폭행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종용한 정황이 제기됐다. 특히 김씨의 머리와 뺨을 때리면서 서류에 지장을 찍을 것을 강요하고, 날인을 거부하자 억지로 지장을 찍었다고 김씨 측은 주장했다.
이 같은 경찰 수사의 위법성과 강압성이 인정되면서 법원은 2015년 11월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이는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 사례였다.
무죄 선고로 이날 바로 출소한 김씨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데 이렇게 수십년이 걸릴 일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만 이번 재판은 김씨에게 최초 무기징역이 선고된 1심에 대한 재심이다. 검찰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 2심이 진행된다.
해남=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