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대기자금 한 달 새 23조 급증

입력 2025-01-07 01:31
서울 시내 은행 현금인출기(ATM) 모습. 연합뉴스

은행에 맡긴 돈 가운데 언제든 빼서 쓸 수 있는 요구불예금이 한 달 새 23조원 급증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은행 수신 금리마저 떨어지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늘어난 모습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 잔액은 631조2335억원으로 집계됐다. 11월 말 608조2330억원보다 23조5억원 증가한 수치다.


요구불예금은 보통 월급통장 등으로 활용하는 수시입출금 예금을 가리킨다. 언제든 자금을 넣었다 뺄 수 있어 이자율도 연 0.1~0.2% 수준으로 매우 낮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을 때 시장의 흐름을 관망하는 자금으로 해석된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현금을 보유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정국 불안이 이어지며 실제로 국내 금융·외환 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지난달 코스피는 한 달 새 2.30% 하락했다. 외국인 투자금이 3조5844억원 규모로 빠져나갔다. 장기간 경기 침체에 기업 수출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정국 불안이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평가다. 원·달러 환율도 1400원대를 훌쩍 넘어 1500원선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11월까지 증가세를 보이던 정기예금 수요도 감소로 돌아섰다. 금리 인하 전 ‘막차 수요’로 7개월 연속 증가하더니 예금 금리가 하향 조정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927조916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21조1285억원 감소했다. 정기예금이 줄면서 5대 은행의 총수신 잔액도 2048조3343억원으로 전월보다 약 2조827억원 줄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이날 기준 5대 은행의 만기 1년 주요 정기예금 상품 최고금리는 연 3.00~3.30% 수준이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지난 10월 12일(3.35~3.80%)과 비교해 하단이 0.35~0.50% 포인트 낮아졌다. 30대 투자자 김모씨는 “위험자산은 변동성이 크고 만기가 긴 예금은 금리를 고려하면 투자 매력이 떨어져 마땅히 목돈을 부을 곳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올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예고하면서 은행권 예·적금 금리는 당분간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올해 통화신용정책 운영 방향을 발표하며 “금융안정 위험에도 유의하면서 경제 상황 변화에 맞춰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