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새해 우리 경제에 거는 희망

입력 2025-01-07 00:33

새해가 시작됐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해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희망에 부풀어 있어야 할 시기다. 그러나 올해는 이 같은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내수 경기가 어려운 데다 비상계엄 이후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할 여유조차 없었다. 애써 놀란 마음을 다스릴 틈도 없이 새해 벽두를 앞두고 전 국민을 슬픔에 빠트린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어느 하나도 감당하기 벅찬데 생각지도 못했던 비현실적인 일들이 한꺼번에 우리를 덮친 격이다.

경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이슈를 삼키고 있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향방은 알 도리가 없어 시간만 믿고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그 밑에서 곪아가는 우리 경제는 걱정스럽기만 하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수출이 그나마 버텨 잠재성장률 수준인 2%대 초반의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면서 가계나 기업의 시름은 더 깊어졌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는 99만명으로 2006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 수준이었다. 음식업, 소매업 폐업률은 15%를 상회했다. 중소기업 연체율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0.7%로 2022년 동월 0.3%에서 2배 넘게 상승했다. 주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인 법인의 파산 건수는 지난해 11월까지 1745건으로 2023년 전체 1657건을 이미 뛰어넘었다. 3000을 넘을 것이라던 종합주가지수는 지난해 일본이 20%, 대만이 30% 넘게 상승하는 동안 10% 하락해 2400에도 못 미치는 참담한 실적을 나타냈다. 이 와중에 지난해 말 기준 5대 은행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578조원으로 1년간 49조원이나 늘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은 경기 악화로 문을 닫고 주가는 하락하고 가계는 돈을 빌려 마지막 보루라고 믿는 부동산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올해 우리 경제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경기 부진과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정부가 제시한 성장률이 1.8%에 불과하다.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성장은 가계나 기업이 지난해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을 암시한다. 내수 위축은 어렵게 버티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을 한계 상황으로 몰아붙이고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원화 환율은 기업의 비용을 높이고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곧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통상 정책 등 급변하는 글로벌 교역 환경에 적기에 대응하지 못하면 수출도 장담할 수 없다.

한 해 성장률은 여건이 나쁘면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정국 불안에 손을 놓고 있다가 그동안 축적한 성과가 훼손되면 잠재성장률마저 1%대로 고착화될 것이다. 우리 경제시스템을 원활히 작동시켜 대외신인도를 유지하고 공직자가 중심을 잡고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관료 시스템의 존재 가치를 보여줌으로써 경제 주체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이 중요한 이유는 필요할 때 쓰기 위함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낮은 곳부터 쓰러진다. 취약계층 지원, 필수 투자 확대 등에 재정이 나서야 할 때다.

미국의 정부효율부 신설에서 보듯이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고 규제 체계를 합리화해 기업이 글로벌 경쟁을 헤쳐 나가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고환율과 주가 하락의 틈을 타 외국 자본이 미래 성장동력인 핵심 기술 기업을 넘보지 못하도록 관련 체계를 다시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통화 당국은 중소기업 지원, 일자리 창출 등에 유동성 공급을 확대해 재정정책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가 정치적 불확실성에 흔들리지 않음을 보여준다면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다시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를 믿고 각자의 역할을 다해 놀라운 역사를 일궈온 우리 경제의 저력에 희망을 건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