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영장 이의신청’ 기각… 尹 거부 논리 명분 잃었다

입력 2025-01-05 18:58

법원은 5일 윤석열 대통령 측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수색영장 집행을 불허해 달라며 낸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윤 대통령 측이 그간 제기한 공수처의 내란죄 위법 수사권 문제, 서울서부지법의 관할권 문제, 형사소송법 예외 조항이 포함된 영장의 위법성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거부 논리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서부지법 형사7단독 마성영 부장판사는 이날 “신청인(윤 대통령)이 체포·수색영장 발부에 대해 다투는 것은 부적법하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마 부장판사는 “수사 단계에서 체포·구속된 피의자는 적부심사를 청구할 수 있을 뿐 영장 발부나 기각 등은 준항고 대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체포영장 집행 이전 다툴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취지다.

법원은 공수처가 수사권 없는 내란죄에 대해 영장을 발부받아 위법하다고 한 윤 대통령 주장도 전부 배척했다. 마 부장판사는 “직권남용죄가 공수처법상 고위공직자 범죄에 포함돼 있고, 그와 관련 있는 내란죄를 혐의사실에 포함시켰다고 해서 위법이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공수처법상 ‘수사처 검사가 범죄지 등을 고려해 형사소송법상 관할 법원에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점을 감안할 때 서울서부지법 영장 청구도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이 공수처가 청구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데 이어 이의신청 기각 결정문을 통해 공수처의 수사 가능 여부를 재확인한 것이다.

‘형사소송법 110조(군사상 비밀 관련 압수수색 제한 조항) 등은 적용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힌 수색영장은 위법·무효라는 윤 대통령 측 주장도 배척됐다. 마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수색에 형사소송법 110조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게 타당하고 영장 기재는 이를 확인하는 의미”라며 “법령 해석이라는 사법권 범위 내에서 법관이 할 수 있는 행위이며 입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으로 윤 대통령 측의 체포영장 거부는 사실상 명분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 변호인 윤갑근 변호사는 결정 직후 “대법원에 재항고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며 불복할 뜻을 밝혔다. 윤 대통령 측은 체포영장 집행에 관여한 오동운 공수처장과 이호영 경찰청 차장 등 150여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지정한 탄핵심판 변론 기일과 관련, “윤 대통령이 적정한 기일에 출석해 의견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측은 내란죄 수사부터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까지 단계마다 절차적 하자를 주장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국회가 탄핵 사유에서 내란죄를 제외하겠다고 한 것을 놓고 '탄핵소추가 무효'라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하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주장은 5일 법원에서 기각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에 비춰볼 때 탄핵소추 사유 정리에도 문제가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윤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가 주 2회꼴로 다섯 차례 기일을 지정한 것을 놓고 "편파적 재판 진행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오는 14일, 16일, 21일, 23일과 2월 4일을 변론기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사건 때도 헌재는 기본 주 2회, 많을 땐 주 3회 변론을 열었다. 법조계에선 대통령 공석 상황을 감안할 때 헌재가 신속히 재판을 진행하는 게 당연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가 내란죄를 빼는 식으로 탄핵소추 사유를 정리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윤 대통령 측은 "내란죄 주장 철회는 국회 의결사항"이라며 반발했다. 국민의힘도 탄핵소추 재의결이 필요하다며 윤 대통령 주장에 힘을 보탰다.

법조계에서는 야당 측이 쟁점에서 내란죄를 제외하고 헌법 위주로 정리하겠다고 한 것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무력화하려 하는 등 비상계엄 관련 사실관계는 같기 때문에 전혀 문제 없다"며 "형법상 내란죄를 독자적 탄핵 사유로 삼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같은 사실을 헌법적 측면에서만 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특히 탄핵소추 사유 철회는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이었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주도로 진행된 일이라는 점에서 윤 대통령과 여당 주장이 '자가당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권 원내대표는 당시 뇌물죄 등 구체적 죄명은 삭제하고 헌법 위배 사항만 담아 탄핵소추 의결서를 재정리하겠다는 서면을 냈다.

헌재도 이를 받아들여 헌법 위반 사유만으로 쟁점을 다시 정리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뒤늦게 소추 사유 정리가 위법하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구체적 사실관계가 기재돼 있어 소추 사유 확정에 어려움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 사건에서 뇌물죄 해당 여부는 따로 판단하지 않고 파면 결정을 내렸다.

윤 대통령 사례에서도 헌재가 내란죄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도 탄핵심판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 전 대통령 당시 뇌물죄는 헌법상 기업 경영의 자유나 기업의 재산권 침해로 돌려서 판단했다"며 "윤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가 그런 내용을 모르지 않을 텐데 탄핵 심리를 흔들고 지연시키려 법리적으로 타당성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한주 성윤수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