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12·3 비상계엄 사태가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한 윤석열 대통령의 ‘시국 인식’에서 촉발된 것으로 파악했다. 계엄 선포 9개월 전부터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에게 여러 차례 계엄 필요성을 언급했고, 김 전 장관 등 고위 군 관계자들이 윤 대통령과 시국 인식을 공유하며 계엄을 치밀하게 준비한 정황도 드러났다. 윤 대통령이 계엄 문건을 직접 승인하고 국무위원들 만류에도 계엄 선포를 강행하는 등의 혐의가 드러난 만큼 향후 수사에 불응할 명분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5일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가 작성한 김 전 장관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약 9차례 계엄 필요성을 시사했다. 계엄 관련 첫 발언은 지난해 3월 말~4월 초 사이에 나왔다. 당시 윤 대통령은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김 전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에게 시국 상황이 걱정된다며 “비상대권으로 헤쳐 나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삼청동 안가에서 김 전 장관, 여 전 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강호필 당시 합동참모본부 차장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장관은 “이 네 명이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라고 했다.
여당의 22대 총선 패배로 여소야대 지형이 더 강화된 뒤 윤 대통령의 어조는 격해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치인과 민주노총 관련자를 거론하며 “현재 사법체계하에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비상조치권을 사용해 조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11월 9일에는 이 전 사령관에게 수방사의 부대 편성 등을 물은 것으로 조사됐다. 11월 24일 윤 대통령은 명태균씨의 공천개입 의혹 등을 거론하며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언급했다.
김 전 장관은 여 전 사령관에게 “국회를 통제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확보해 부정선거 증거를 찾아야 한다”면서 계엄 준비를 주도했다. 김 전 장관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2017년 3월 당시 국군기무사령부(현 방첩사령부)에서 작성한 계엄 문건을 참고해 포고령 등을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일 김 전 장관에게 “계엄을 하게 되면 병력 동원을 어떻게 할 수 있나”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김 전 장관은 준비해둔 계엄 선포문, 포고령 등을 보고했고 윤 대통령은 포고령에서 ‘야간 통행금지’ 부분을 삭제하라는 등 보완 지시를 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자신의 보완 지시가 반영된 계엄 문건에 대해 별다른 수정 없이 “됐다”면서 승인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전 국무위원들 반대에도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 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된다”고 했다. 또 “지금 이 계획을 바꾸면 모든 게 다 틀어진다. 발표해야 하니 나는 간다”고 말한 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