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 진입, 성인 NIP 백신 종류·대상 연령 확대해야

입력 2025-01-06 18:02 수정 2025-01-20 17:15
현행 NIP 어린이 위주로 시행
성인 대상은 65세 이상 3종뿐
50세 이상 고령층 발병 증가
대상포진, NIP 포함 지속 요구
예산 문제로 국가 접종 어렵다면
다양한 비용 부담 방식 고민 필요

대상포진 백신 접종 장면. 초고령 사회를 맞아 국가예방접종(NIP) 백신의 종류와 대상의 성인 확대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고령층 대상 대상포진 백신의 NIP 도입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 어도비 스톡 제공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면서 국가예방접종(NIP) 백신의 종류와 대상 나이의 성인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NIP 사업은 어린이 위주로 시행되고 있다. NIP 중 성인 대상은 65세 이상이 해당하는 인플루엔자(독감)와 폐렴구균 백신 등 2종 정도다. 코로나19 백신은 현재 임시 국가접종으로 지원되고 있다.

특히 대상포진 백신을 NIP에 포함해달라는 요구가 지속해 왔다. 대상포진은 50세 이상 고령층에서 발병이 늘고 있으며 대상포진 후 신경통 같은 삶의 질과 연계된 질병 부담이 높아 백신 접종을 통해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2023년 진행된 질병관리청의 NIP 도입 백신 우선순위 평가에서도 70세 이상 대상으로 대상포진 생백신 단독(4위), 생백신과 재조합 백신 병용(13위), 재조합 백신 단독(15위) 순으로 조사된 바 있다.

지난해 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70~79세 대상포진 예방접종 실시를 위해 정부의 2025년 NIP 예산에 725억원 증액의 필요성이 언급됐으나 본회의에서 최종 반영되지 않았다. 따라서 올해 대상포진 백신 접종도 지방자치단체 예산 지원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대상포진 백신 접종은 전 세계적으로 생백신에서 이점이 많은 재조합 백신(사백신)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예방접종 효과가 생백신보다 훨씬 높고 장기간 유지되며 면역 저하자에게도 접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백신은 백혈병·림프종 환자, HIV감염인, 세포면역 저하자, 면역억제제 사용자, 치료받지 않은 활동성 결핵 환자, 고용량 스테로이드 사용자 등에겐 접종할 수 없다.

생백신→재조합 백신 사용 추세

대상포진은 어릴 적 수두에 걸린 후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ZV)’가 몸속 신경뿌리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신경을 타고 나와 얼굴 옆구리 팔다리 피부에 띠 모양의 붉은 발진을 일으키면서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여름철과 요즘 같은 겨울철에도 발생이 잦다.

대상포진은 고령자나 면역 저하자에서 발병 위험이 크다. 암, 류머티즘 질환자는 일반인보다 발병률이 3배 이상,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혈액암 환자는 약 9배 높다고 보고돼 있다. 이런 고위험군 대상으로 대상포진 백신 접종이 우선 필요하다. 그런데 생백신은 면역 결핍자들에겐 사용에 제약이 따른다.

생백신은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일부를 변형시켜 면역 유발 능력은 유지하고 독성을 일으키는 능력은 약화시킨 방식이다. 면역력이 약한 이들에게 접종 시 위험할 수 있다.

실제 국내외적으로 면역 저하자가 대상포진 생백신 접종 후 사망한 사례가 보고됐다. 지난해 10월부터 65세 이상에게 대상포진 백신 무료접종 사업을 진행한 경남의 한 군 단위 지자체에선 83세 암 환자가 접종 1주일 뒤 급성폐렴으로 입원했고 3일 만에 숨졌다. 또 86세 노인은 접종 후 오히려 대상포진이 발생해 치료 도중 급격한 면역 저하를 보이다 26일 만에 사망했다.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은 입증되지 않았으나 유족들은 백신의 영향을 의심하고 있다.

호주에서도 최근 몇 년새 생백신 접종 후 3건의 사망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이 가운데 2건은 면역 저하자였다. 이후 호주 보건당국(TGA)은 생백신을 고려하는 모든 사람은 접종 전에 면역 상태를 평가받아야 하고 면역 상태가 명확하지 않으면 생백신 사용을 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바이러스의 특정 단백질을 새로 조합하는 방식의 재조합 백신은 생백신과 달리, 면역 결핍 환자들에게 접종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만 18세 이상인 조혈모세포 이식자, 고형암, 혈액암, 고형 장기 이식자 등 중증 면역 저하자에게도 접종할 수 있다. 백신 효과 또한 높다. 임상시험 결과 50대 이상에서 97.2%의 높은 예방 효과를 보였으며 11년 경과 시점의 백신 효능이 82%로 높게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백신의 경우 50대에선 69.8%, 60대 64%, 70세 이상에서 38%의 예방 효과를 보여 효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게다가 접종 후 9~11년 지나면 유효성 추정치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는다고 보고돼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을 비롯한 미국 영국 호주 등 주요 선진국에선 고령층 및 면역 저하자의 대상포진 예방을 위해 재조합 백신을 생백신보다 우선해 접종을 권고한다. 영국 호주는 2023년부터 NIP 사업에서도 재조합 백신만 접종하고 있다.

올해 지자체 200곳, 무료 접종 지원

국내에선 지난해 9월 글로벌제약사가 이런 트렌드 변화를 고려해 자사의 생백신 제품 공급을 중단했다. 현재 국산 제품 1개만 시판 중이다. 재조합 백신은 또 다른 글로벌제약사 제품 1개가 보급 중이다.

대상포진 백신 무료 접종을 지원하는 지자체는 지난해 말 보건소 기준 178곳(전체 261개)으로 파악된다. 생백신 단독 사용 지자체는 160곳, 재조합 백신 사용 지자체는 7곳으로 확인된다. 11곳은 두 가지 모두를 쓰고 있다. 올해 시행 계획을 밝힌 지자체를 포함하면 200곳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백신 사용 지자체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예산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1회 접종인 생백신은 비급여로 10만~15만원, 2회 접종인 재조합 백신은 40만~50만원이 든다. 지자체들도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대상포진 백신의 NIP 포함을 원하고 있다.

김영상 분당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지자체별 가용 예산에 따라 접종 백신 및 대상이 달라 지역별 의료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국가 지원 사업이 아니다 보니 보건소에 주민이 와서 접종할 경우 기저질환 등 면역 저하자 파악이 어렵다. 이런 의료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NIP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산 문제로 국가 차원 접종이 어렵다면 지금의 100% 정부 지원 방식 외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실질적으로 예방접종을 통해 혜택을 받고 있는 건강보험에서 접종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방법, 일부 해외 국가처럼 대상별로 지원 비율을 조정하거나 바우처를 지급하는 등 다양한 지원 방식을 정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NIP 대상을 카테고리에 따라 나눈 후 접종 비용 비율을 나눠 지원하고 있다. 또 싱가포르와 홍콩은 일정 금액을 정부에서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편 NIP 사업에 포함돼야 할 성인 백신으로 대상포진 외에도 19~64세 인플루엔자 4가 백신, 65세 이상 인플루엔자 고면역원성 4가 백신, 19~49세 A형간염 백신, 20세 이상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Tdap/Td) 백신 등이 거론되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