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 뜯은 쌀 이웃에 전하고… 어르신 밥상 1000원 받는 뜻은

입력 2025-01-06 03:00
게티이미지뱅크

연말연시는 한국교회의 이웃사랑이 집중되는 시기다. 단순히 나누는 것을 넘어 원칙과 배려로 구제 감수성을 높이는 교회들의 노력이 주목받고 있다.

서울광염교회(조현삼 목사)는 배가 고프다고 찾아오는 이웃에게 한 끼 식사비용을 지원한다. 단 현금보다는 쌀을 우선 지원하며 쌀은 포장을 뜯어 전달한다. 이석진 서울광염교회 부목사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쌀을 팔아 소주로 바꿔 드시는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교인을 통해 들어온 30만원 이하 구제 요청은 일단 조건 없이 지원한다. 30만원이 넘으면 실사를 거쳐 집행 여부를 결정한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더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선별해 돕기 위해서다.

서울광염교회는 배가 고프다며 교회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포장을 뜯은 쌀을 제공한다. 쌀을 팔아서 술을 사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서울광염교회 제공

‘70세 이상은 1000원’. 경기도 부천성만교회(이찬용 목사)가 운영하는 ‘행복한 식당’ 간판 옆에 적힌 문구다. 지난 3일 식당 앞에는 오픈 30분 전부터 어르신들이 길게 줄을 섰다. 여느 기사식당 못지않은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이곳은 지역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이찬용 목사는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기보다 1000원을 내면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70세 이하 식대는 7000원이다. 이 목사는 “이 가격은 어르신들의 당당한 식사를 보장하고, 지역 상권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회는 3년째 ‘행복한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구제의 양보다 ‘어떻게’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의 종교 현황’을 보면 종교계가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529곳 가운데 개신교는 259곳으로 49%를 차지한다. 가톨릭 불교 원불교 등을 한참 앞선다. 그러나 2023년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서는 가톨릭이 사회봉사 활동을 더 활발히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가톨릭 29.4% vs 개신교 20.6%). 구제의 양보다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구제 활동에 온기를 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희소병을 앓는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려 전국 교회를 찾은 전요셉 목사를 동행 취재했다. 당시 적지 않은 교회가 전 목사를 문전박대하며 기도 요청마저 난감해했다. 전 목사는 “어떤 교회는 겨울 추위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교회에도 어려움은 있다. 방현섭 서울 좋은만남교회 목사는 개척 초기 교회로 찾아온 한 노숙인의 사연을 소개했다. 차비를 요청한 남성을 차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만원을 건넸지만 남성은 ‘너무 적다’며 화를 냈다. 방 목사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준비 부족이 문제였다”고 털어놨다. 이 일은 그의 구제 사역을 다시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됐다.

따뜻한 원칙과 전략

부천성만교회가 운영하는 행복한 식당의 가격 안내문. 부천성만교회 제공

전문가들은 ‘따뜻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창영 백석대 교수는 “목적이 좋으면 방법도 좋아야 한다”며 유대인의 구제 방식을 참고할 것을 제안한다. 유대인들은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지키고 자립을 돕는 구제”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는다. 교회 구제 활동에도 적용 가능한 가치다.

이랜드복지재단(대표 정영일)의 긴급 구제를 담당하는 SOS위고봉사단도 철저한 원칙에 따라 이웃을 돕는다. 이들은 지원 요청이 들어오면 3일 내 실사를 통해 도움을 제공하지만 만성적 어려움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 정영일 대표는 “우리는 ‘돕는다’는 말 대신 ‘선물한다’고 표현해 상대방의 자존심을 지킨다”고 말했다.

방 목사는 “돕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략 없는 선행은 상처로 돌아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노숙인을 돌보면서 금전 대신 쌀 옷 잠자리 등을 제공하고 쉼터나 고향으로 가는 여정을 돕는 원칙을 세웠다고 전했다. 그는 “원칙은 나를 지키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며 “구제에도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