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가 말합니다.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이제 전부가 연결됐다. 높이가 절반에 이르게 된 것은 백성들이 마음을 들여 일을 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성이 건축돼 전부 연결됐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전부 연결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연결과 연합이 이루어졌을 때 산발랏과 도비야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대적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적들이 분노해서 하는 말은 느헤미야와 다릅니다. “예루살렘 성이 중수돼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전부 연결됐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대적의 입을 통해서, 공격해서 무너뜨리기를 원하는 대적의 분노를 통해서 오히려 깨닫게 되는 것은 주께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사랑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결국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열매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놓친 것들, 즉 틈을 메꾸어주심이라는 것입니다.
대적들은 왜 그렇게 분노했을까요. 그들은 아라비아 사람, 암몬 사람, 아스돗 사람입니다.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원수들, 대적들이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문제입니다. 존재가 원수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분노한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대적은 산발랏과 도비야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러한 영원한 대적이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9) 사탄은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데, 놀라운 것은 오히려 우리가 대적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대적의 공격이 있으면 놀랍니다. 사탄은 우리를 당연히 싫어하고 분노하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0~41) 깨어 있으라는 말 뒤에 오는 명령은 기도하라였습니다. 우리가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 깨어 해야 할 일은 바로 기도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깨어 있음이란 바로 기도였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4:2)고 전합니다.
사탄이 집어삼키려고 할 때 대적하는 방법은 깨어있는 일. 그리고 깨어서 할 일은 바로 기도입니다. 느헤미야도 원수를 대적하기로 했습니다. 깨어 있기로 했습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갑옷을 벗지 않겠다 합니다. 쉬지 않겠다 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원수를 대적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참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기도의 자세입니다. 단순히 연속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쉬고 싶을 때 쉬지 말고 오히려 깨어 기도하며 대적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두렵고 무서운 때입니다. 그러나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이 우리 일이 아닙니다. 깨어 근신하고 쉬지 않고 갑옷을 벗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 일입니다. 어둠이 깊어진 것 같은 이때 오히려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김동주 목사(한소망청년교회)
◇김동주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목사로 연세대(심리학과), 장로회신학대학원(MDiv), 같은 대학원 예배설교학 석사(ThM)와 박사(PhD)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현재 경기도 파주 한소망교회에서 독립해 운영하는 청년교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