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25) 사흘 연속 내기에서 진 어른들, 실력 인정하고 항복

입력 2025-01-06 03:04
최경주 장로가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언웰스 골프리조트에서 열린 ‘LG 스킨스게임’에서 우승 후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당시 나와 골프를 치던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우리 둘 사이에는 반드시 지키는 규칙이 있었다. 내기를 통해서 번 돈을 절반으로 나눠 갖는 것이었다. 내가 번 230만원에서 캐디피, 식비 등을 제외하고 반을 나누자 108만원이 남았다. 돈을 비닐봉지에 넣어 친구에게 건넸다. 그날 친구는 골프를 치지도 않았는데 하루에 큰돈을 번 셈이다.

내기는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다. 어른들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충남 서산에서 나를 실력으로 이길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어른들은 오기가 생겼는지 강원도 홍천과 충남 대산읍 등에 있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괴물이 나타났다고 빨리 서산으로 오라고 재촉했다. 그동안 약자만 상대하다가 ‘강적’을 만나자 흥미로움과 승부욕이 생긴 것 같았다.

나는 프로도 아니었고 군 전역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홍천팀 상대로도 2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벌었다. 타수도 60대를 쳤다. 이틀 만에 현금으로 큰돈을 번 우리는 바에 가서 노래도 한 곡 하고 한잔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야, 서산 좋다잉.”

그 순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이 난데 내일 또 라운딩 돌자고. 이제는 서울로 가는 거 어뗘.” 나는 흔쾌히 응했다. 삼일 연속으로 라운딩을 돌게 된 것이다. 다음 날에는 경기도 용인 플라자CC(구 프라자CC)에서 게임을 했는데 이날도 60대를 쳤다. 기준인 72타에 비하면 잘 치는 쪽에 속하는 스코어였다. 60대를 삼일 연속으로 친다는 건 인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날도 수입이 짭짤했다. 근데 연달아 번 액수가 크다 보니 어른들한테 돌려드려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주머니에서 한 번 나간 돈은 다시 넣지 않는다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나는 속으로 너무 감사했다. 나와 친구는 이 돈을 기반으로 다음 훈련지 정할 계획을 짰다.

서산으로 돌아온 나는 ‘최 박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한 것이다. 이제는 나에게 레슨을 받겠다며 먼저 레슨비를 제안하기도 했다. 골프장 레슨비는 인당 5만원이었는데, 나는 6만원을 제안했다. 번뜩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케이. 최 박사 실력을 보니 1만원 올려줘도 괜찮을 거 같어.”

사장님은 내 속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레슨비가 6만원이면, 손님이 거스름돈이 없어 10만원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거스름돈 4만원을 끝까지 받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 받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4만원을 더 받게 되는 셈이었다. 대신 해당 손님을 레슨할 때는 남들보다 더 자세히 열정을 담아 가르쳐드렸다. 처음에 세 명으로 시작한 레슨은 2주 차에 15명, 한 달이 되자 30명으로 늘어났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