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참사 수습 국가시스템
이번엔 정상 작동…그동안
정치가 방해했던 것 아닌가
이번엔 정상 작동…그동안
정치가 방해했던 것 아닌가
지난 3일 지인의 부친상 조문 차 대전 소재 한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 일이다. 두리번거리며 빈소를 찾던 중 유독 수많은 화환이 서 있는 빈소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분인가 하는 궁금증에 주변 얘기를 언뜻 들어보니,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항공기 부기장의 빈소였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업계 동료들이 보낸 화환이 서 있는 이유도 납득이 갔다.
입구에는 ‘언론 및 기자 출입을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문구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과거 취재 관행대로라면 문구를 무시하고서라도 빈소를 찾아 사연을 들어봤을 터였지만, 그 생각은 곧바로 접었다. 혹시나 유족들에게 누가 될까 장례식장 이름과 고인의 성함도 알리지 않겠다 다짐한 뒤 빈소 앞에서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끝까지 승객들을 지키려 했던 이에게 최소한의 인사는 하고 싶었던 점만큼은 유족들께 양해를 구한다.
국민들이 지근거리에서 접한 안타까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이란 국가의 시스템은 정상 작동하고 있는가를 새삼 생각해보게 만든다. 다행인 점은 사고가 발생한 지 7일이 지난 5일 기준으로만 본다면 시스템은 생각보다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사고 발생 직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이후에도 또 다시 현장을 찾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매번 주재하며 고인과 유족들을 살폈다.
덕분인지는 몰라도 행정안전부와 경찰청 등 재난대응 기관들의 수장이 부재한데도 사고 수습은 원활히 진행됐다. 유족 입장에서는 100% 만족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과거 참사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세월호·이태원 참사 당시 국가 시스템이 엉망진창 같았던 무력감은 덜 느껴지는 편이다. 일각에서 국가가 왜 임의로 애도기간을 정하느냐는 비판이 일자마자 곧바로 대응한 점도 눈에 띈다. 최 권한대행은 지자체 판단에 따라 합동분향소 운영 기간을 자율적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남은 일은 유족들이 요구한 철저한 사고원인 조사와 함께 유족들의 아픔을 사회적으로 보듬는 일이다. 마지막까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길 바란다.
다른 얘기지만 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야탑역 인근 복합상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도 기억에 남는다. 지하 5층, 지상 8층 규모 건물에서 대형 화재가 나며 인명 피해 우려가 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망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 역시 화재 진압과 같은 국가 시스템이 잘 작동한 덕분이지 싶다.
다만 일련의 두 사고를 보며 든 의문은 왜 지금은 가능하고 과거엔 불가능했느냐는 점이다. 국가 시스템이 단기간에 정합성을 띠게 된 것은 아닐 터다. 앞선 사고와의 차이점은 대통령이 없는 상황이고 사고가 여야 정쟁화하지 않았다는 점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판단은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정치가 국가 시스템의 정상 작동을 방해하는 이물질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쌓아 왔던 한국의 대외 신인도가 대통령의 독단적인 비상계엄 발동만으로 추락할 위기에 놓인 점을 목도했다. 정치권의 분열이 국가를 양분하고 대립하는 선동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점 역시 되새길 문제다. 국가 시스템이 더 잘 작동하도록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의 권위는 실종됐다. 되레 국가에 위협적인 걸림돌로만 보이는 이 상황은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학창 시절 은사님은 정치를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약자에게는 복지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고 중산층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국가에서만 힘을 얻을 법한 말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극을 정치가 분배를 통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뜻으로도 들렸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하지만 국가의 경제·안보가 튼튼해야 하고 그래야 시스템도 작동한다. 이런 더불어 사는 일에 현재의 정치는 어떤 기여를 하는지 묻고 싶다. 국가에 ‘품격’을 부여하기 위한 정치권의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일지도 모른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