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병산서원 못 자국

입력 2025-01-04 00:40

경북 안동시에 위치한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1527년에 설립됐다. 사적 제26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재다. 낙동강 건너 병풍 모양의 병산을 바라볼 수 있는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이곳에 있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만대루는 누각을 지탱하는 기둥과 지붕만으로 구성돼 소박하고 절제된 조선 중기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서원 누각의 대표작으로 보물로도 지정돼 있다.

오래된 나무는 못질을 잘못하면 쪼개질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하물며 목조 문화재에 못을 박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공영방송인 KBS 드라마 제작팀이 모형 초롱을 매달기 위해 허가 없이 만대루 나무 기둥과 기숙사 동재 기둥에 못을 박았다. 시민들이 망치로 못을 박는 광경을 보고 문화재를 훼손해도 되느냐고 항의했지만 이들은 오히려 시의 허가를 받았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안동시가 3일 확인한 못 자국은 7개. 개당 두께 2~3㎜, 깊이 약 1~1.5㎝가량이다. 현장 점검을 나온 전문가는 문화재 복구 과정을 거치면 오히려 훼손이 더 두드러져 보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KBS는 대하사극 ‘대조영’ 촬영 때도 국가사적 제147호 문경새재 관문 곳곳에 대못을 박아 비판을 받았다. 당시의 재발 방지 약속은 어디로 가고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최근 몇 년간 문화재 훼손이 심각하다. 2년 전엔 세계문화유산인 경복궁 담벼락에 충격적인 낙서 테러 사건이 있었다. 복구에 상당한 인원과 비용(1억3000여만원)이 들었지만 완전한 복구는 불가능했다. 지난해는 세계문화유산인 선릉의 봉분이 훼손됐다. 안동 하회마을은 관광객들이 남긴 낙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처벌 강화는 물론 문화재 중요성에 대한 시민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 K팝 K드라마의 인기로 한국을 체험하려는 해외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우리부터 먼저 우리 문화재를 아끼고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