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내수 경기침체와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저출생과 기후위기처럼 단기간에 해결하기 힘든 과제들도 악재다. 내수 확장 가능성이 점점 좁아지는 가운데 유통업계는 해외 진출을 통해 살길을 모색한다. 외연 확장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5일 대한상공회의소의 ‘2025년 유통산업 전망 조사’에 따르면 올해 국내 소매유통시장은 지난해 대비 0.4% 성장에 그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응답 업체의 66.3%는 내년 유통시장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해 유통업계 10대 이슈 가운데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소비 위축’(60.7%)을 가장 많이 꼽을 만큼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있다.
주요 기업들은 지속가능성을 위한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고 있다. 유통가 전통 강호 롯데그룹은 쇼핑·식품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롯데그룹은 2023년 9월 베트남에 초대형 상업복합단지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를 개장하면서 글로벌 쇼핑몰 사업 첫 출발을 알렸다. 개장 9개월 만에 매출 2000억원을 돌파하는 실적을 올렸다.
해외 진출 성과는 실적으로도 확인된다. 롯데쇼핑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연결 매출액은 10조509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 감소했지만, 베트남 매출은 180% 늘었다. 해외 할인점과 백화점 매출은 각각 1조1271억원, 832억원으로 전년 대비 2.1%, 60.5% 신장했다. 롯데그룹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을 대상으로 추가 출점도 계획 중이다. 2030년 매출 20조3000억원·해외 매출 3조원 달성을 골자로 한 ‘기업가치 제고 정책’에 동남아 사업을 핵심축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연내 싱가포르에 전략 수립을 담당하는 인터내셔널헤드쿼터(iHQ) 조직을 설립할 예정이다.
신세계그룹은 미국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용진 회장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만난 것도 미국 사업 확대에 의미 있는 행보로 해석된다. 정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만나 깊이 있게 사업 얘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마트는 미국에서 인수합병 등을 통해 그로서리 시장 외형을 키워나가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베트남과 몽골을 중심으로 대형·소형 점포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도 펼치고 있다.
정유경 ㈜신세계 회장은 지난해 10월 승진 직후 조직개편을 통해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뷰티 사업을 총괄하는 뷰티 전략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지목한 뷰티 사업의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조직이다. 미국 등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다. 정 회장이 승진 후 처음 만든 조직인 만큼, 성과를 내기 위해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식품업계는 올해도 K푸드 성공신화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CJ제일제당의 해외 식품 사업 매출액은 2019년 3조1540억원에서 2023년 5조3861억원으로 4년 만에 70% 이상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도 호조세를 지속했다. 전체 식품 매출의 절반가량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자회사인 미국 냉동식품 기업 슈완스를 통해 사우스다코타주에 2027년 아시안 푸드 신공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SPC그룹도 미국 텍사스주에 제빵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SPC그룹은 14개국에서 600여개의 파리바게뜨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농심은 유럽 현지에 판매법인 설립을 검토하면서 해외 영토 확장에 나설 전망이다. 농심은 이미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현지 공장을 운영 중이다. 농심은 국내에서 동남아와 유럽 지역 수출을 전용으로 하는 생산 공장을 새로 짓는다.
삼양식품은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미주 시장을 겨냥해 경남 밀양에 밀양제2공장을 착공했다.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중국에 해외 공장을 처음 신설한다.
인도도 주요 공략 국가로 꼽힌다. 롯데웰푸드는 올해 인도 하브모어 빙과 신공장을 짓고, 빼빼로 생산 공장을 증설하는 등 인도를 거점으로 글로벌 생산 역량을 확대한다.
패션업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무신사는 2021년 일본 법인 설립 후 온라인 시장에 주력했다가 팝업스토어, 마케팅 협업 등을 통해 현지에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가시화된 성과를 내고 있다. 에이블리를 운영하는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은 최근 중국 알리바바그룹으로부터 1000억원 투자받아 아시아, 유럽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편의점업계도 해외 진출에 신경 쓰고 있다. GS25는 지난해 수출 900만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새해에는 수출 1000만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CU와 국내에서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은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중심으로 수출에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내수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된 후 경제, 정치, 사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국내에서 사업하는 데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며 “해외에서 성과를 내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