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핵심 인물인 문상호(사진) 전 정보사령관이 이른바 ‘햄버거집 회동’에 참석했던 정보사 관계자들에게 ‘(수사기관에는) 나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지시를 받은 것으로 진술하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회동에선 민간인 신분의 노상원 전 사령관이 군 관계자들에게 일방 지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은 문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존재와 관여 여부를 감추려 했던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는 최근 문 전 사령관 하급자인 정보사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진술을 확보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17일과 지난달 1일 경기도 안산의 한 햄버거집에서 문 전 사령관과 함께 노 전 사령관을 만났다. 선관위 직원을 위협하기 위한 야구방망이 준비 등은 모두 노 전 사령관의 지시였다고 한다. 회동에 참석했던 정보사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지시했다’ ‘당시 문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 지시를 제지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고 공수처에 진술했다.
문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사태 수사 개시 후인 지난달 8일 정보사 관계자들과 만나 “이번 일은 내가 다 책임지겠다. 조사받게 되면 장관님(김용현)과 내 지시를 받아 했다고 얘기하라”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 전 사령관은 지난달 11일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 출석 후 관계자들을 다시 만나 “내가 국방위에서 얘기한 대로 ‘우리는 임무수행 대기만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공수처는 문 전 사령관 지시대로 정보사 관계자들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정황도 포착했다. 한 정보사 관계자는 지난달 12일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의 지시로 한 것’ ‘실제 행동은 없었고 대기만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는 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지시 이행 여부를 점검한 정황도 확인했다. 문 전 사령관은 지난달 13일 자신의 차량 안에서 경찰 조사를 받은 정보사 관계자를 만나 ‘어떤 질문을 받았고 어떻게 답했느냐’고 물었다. 이 관계자는 ‘사령관이 얘기한 대로 진술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문 전 사령관은 이 자리에서 ‘장관님(김용현)이 노 전 사령관을 도와주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들이 “전부 얘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은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진실을 말해야 보호받을 수 있다’는 변호사 설득에 노 전 사령관 지시가 있었다는 점 등을 뒤늦게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웅희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