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낡은 비행기로 더 많이 날았다

입력 2025-01-02 18:56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저비용항공사(LCC)의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LCC는 대형 항공사보다 오래된 항공기로 더 빡빡한 비행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비 인력은 수년째 정부 권고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LCC의 안전 수준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각 항공사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제주항공 여객기의 월평균 운항시간은 평균 418시간이다.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355시간)보다 63시간, 아시아나항공(335시간)보다 83시간 더 많이 운항했다. 티웨이항공(386시간) 진에어(371시간) 등 다른 LCC도 대형 항공사에 비해 운항시간이 길었다.

코로나19 이후 항공 수요가 급증하자 수익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리한 비행 일정을 짠 결과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추락한 여객기도 사고 이틀 전인 지난달 27일부터 48시간 동안 8개 공항을 13차례 오갔다. 각 공항에 머문 시간은 1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이런 강행군을 소화하기엔 LCC 여객기는 대형 항공사 여객기보다 노후한 편이다. 항공기술정보시스템(ATIS)에 따르면 제주항공이 보유한 여객기 41대의 평균 기령(항공기 나이)은 14.4년이다. 티웨이항공(13.0년) 진에어(12.7년) 등 다른 LCC 여객기도 대한항공(11.4년)과 아시아나항공(12.3년) 여객기보다 나이가 많았다. LCC는 해외에서 중고 항공기를 들여와 중·단거리 위주를 자주 운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노후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월평균 운항시간이 길어지면 항공기 피로를 가중시켜 노후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 늙은 비행기로 더 많이 운항하는데 정비 인력은 부족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LCC 이용자가 증가하자 2016년 ‘LCC 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정비사부터 충원하라”고 권고했다. 제시한 기준은 ‘항공기 1대당 정비사 12명’이다. 그러나 국토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LCC 5곳(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의 2023년 항공기 1대당 평균 정비사 수는 10.94명이었다. 2016년 이후 단 한 번도 12명을 넘어본 적이 없다. 대형 항공사는 16~17명을 유지하고 있다.

운항은 느는 데 인력은 부족하다보니 기존 정비사들은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항공정비사는 승무원과 달리 법적으로 근무시간 제한이 없어서 유연근무제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LCC는 쉬는 날 일하면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해서 일하는 정비사들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제주항공 소속이라고 밝힌 이가 “정비사들은 하루 13~14시간을 일한다. (당신은) 위험한 비행기를 타고 있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됐었다. 송경훈 제주항공 경영지원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고도로 숙련된 정비사가 많았지만 코로나19로 계약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국토부가 권고하는 ‘1대당 12명’ 기준에 못 미치는 기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항공의 정비인력은 현재 41대 기준으로 12.6명이다.

인력뿐만 아니라 정비에 쓰는 돈과 장비도 부족한 실정이다. 제주항공이 지난해 항공기 정비·수리·개조에 쓰겠다고 공시한 예산은 2209억원이다. 여객기 1대당 53억8668만원꼴이다. 대한항공(127억616만원)과 아시아나항공(162억793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내 항공사 중 자체 항공정비(MRO) 시설을 갖춘 회사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뿐이다. LCC는 이런 시설이 없어 엔진 등 핵심부품이 고장 나면 대부분 해외에 보수를 위탁해야 한다. LCC의 해외 정비 비중은 2019년 62.2%에서 2023년 71.1%로 늘었고 그러는 동안 해외 정비 비용도 3072억원에서 5027억원으로 급증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LCC는 대형 항공사에 비해 정비 인력 숫자나 숙련도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이후 LCC 산업이 빠르게 커지면서 내실을 제대로 다지지 못한 측면이 있는데 이번 사고를 계기로 LCC의 전반적인 정비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