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70~80%가 독감”… 소아과엔 오픈런까지

입력 2025-01-03 03:13

2일 오전 11시 서울 관악구의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 진료 대기실은 어린 환자와 보호자로 가득했다. 세 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소파 4개는 빈자리가 없었다. 아이를 안고 서서 순서를 기다리거나 혈압 측정용 간이 의자에 아이를 앉힌 부모들도 있었다. 모두 인플루엔자(독감)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이었다. 간호사 A씨는 “병원에 온 10명 중 7~8명은 독감”이라고 말했다.

전날 휴일 진료를 받지 못한 독감 환자들이 이날 일제히 ‘오픈런’에 나서면서 오전 대기가 금세 마감된 곳도 있었다. 세 살짜리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이모(32)씨는 “1시간 전 병원에 도착했는데, 대기 인원만 10명이 넘어 진료까지 50분을 기다렸다”며 “연말에 아이가 콧물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기침이 떨어지지 않아 휴일이 끝나자마자 진료를 보러왔다”고 말했다.

인근 다른 의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진료 대기실에는 아이들의 기침 소리와 칭얼대는 소리가 가득했다. 이 병원 간호사 B씨는 “오전에만 80명 넘게 진료받을 정도로 환자가 많았다”며 “환자 대부분이 고열 증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이후 인플루엔자 의심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 21일까지 병원을 찾은 외래 환자 1000명당 인플루엔자 의심 증상 환자는 31.3명으로 집계됐다. 3일 발표 예정인 52주 차(지난달 22~28일) 환자 수는 더 늘 것으로 추정된다. 질병청 관계자는 “전주보다 인플루엔자 의심 환자가 많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행은 이달 중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인플루엔자가 성탄절을 전후해 정점을 찍고 1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양상을 보였지만 2020~2022년에는 코로나19 마스크 착용 영향으로 유행이 나타나지 않았다.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로 다시 예전 유행 패턴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유행을 건너뛴 탓에 환자 면역력이 떨어져 중증화율이 올라갈 수도 있다. 실제로 응급실 환자는 지난달 23일 기준 전주 대비 16% 늘어났는데, 대부분 독감 의심 환자로 추정되는 중등증 이하 환자였다.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인플루엔자는 여러 번 반복 감염되면 증상이 가벼워질 수 있지만 최근에는 면역 정도가 떨어져 있다”며 “어린 환자나 어르신은 인플루엔자 때문에 중증으로 가거나 사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