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일괄 사의를 표명했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급 이상 고위 참모진이 2일 “국정은 이어져야 하고, 대통령의 직무정지 중 비서실마저 전부 나가면 그 또한 국정 공백이 된다”며 당분간 업무를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정 실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사의를 만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은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적어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까지는 국정 유지의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 실장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국정과 대통령비서실의 안정을 위해 수석들의 사의는 접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 실장은 최 권한대행이 전날 야간까지 4차례 전화를 걸어 사의를 만류한 일을 수석들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석들은 정 실장의 생각을 이해하지만 행동을 함께해야 한다는 의견을 폈다. 이에 정 실장은 “나도 신중하게 고민하겠다” “사표가 수리될 때까지는 업무를 보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은 최 권한대행에 대한 항의의 의미까지 거두지는 않지만, 더한 국정 공백을 초래해서도 안 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무정지일 뿐 탄핵심판의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단은 자리를 지키는 것이 도리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회의석상에서는 “더 큰 틀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잘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참모의 역할이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정 실장은 전날 국립현충원 참배 현장에서 최 권한대행을 만나 사의를 표명했다. 정 실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실 청사로 복귀했을 무렵 최 권한대행의 전화를 받았다. 최 권한대행은 이때 “비서실장의 사표만 수리하겠다”고 말했고, 이 통화 내용은 다른 수석들도 함께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표 수리 통보로 이해한 정 실장은 직원 인사 등 남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짐까지 꾸렸다고 한다.
다만 최 권한대행은 전날 오후부터 다시 거듭 전화해 사표를 반려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정 실장도 결국 “국정 안정이 중요하다. 나라고 왜 책임이 없겠느냐”며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석들은 정 실장이 거취를 고심하자 “실장이 나가면 수석들이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다”며 “어른들이 모두 나가면 비서관 및 행정관들은 고아가 되는 격”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