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극장가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였던 ‘재개봉’ 열풍이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관객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 극장을 찾아 관람할 가치가 있는 영화인가’를 꼼꼼히 따져본 뒤 영화관으로 향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불만족스러운 신작보단 검증된 명작이 더 낫다는 것이다.
이처럼 변화한 관객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극장들은 지난해 ‘노트북’(2004) ‘비긴 어게인’(2014) ‘남은 인생 10년’(2023) 등 개봉 당시에도 인기 있었던 영화들을 여럿 발굴해 극장에 다시 걸었다. 2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재개봉 영화는 2023년 48편에서 2024년 84편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작품성과 재미가 검증된 재개봉작들은 입소문을 타고 최초 개봉 때보다도 많은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재개봉한 일본 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기존 관객 수였던 13만명의 3배를 넘는 43만명을 재개봉으로 모으며 누적 관객 수 56만명을 기록했다. ‘비긴 어게인’과 ‘소년시절의 너’(2020), ‘노트북’은 각각 20만명 안팎의 관객을 다시금 극장으로 이끌었다.
올해도 이런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고전으로 꼽히는 명작들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새해 첫날에는 ‘색, 계’(2007)가 재개봉했다. 2016년 한 차례 재개봉했던 이 영화는 9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났다. 친일파의 핵심 인물인 이(양조위)와 그를 암살하기 위해 막 부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왕 치아즈(탕웨이)의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인 ‘색, 계’는 여전히 멜로 명작으로 회자한다.
2023년 개봉해 누적 관객 488만명을 모은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오는 4일 개봉 2주년을 기념해 다시 극장에 걸린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 기록을 세우며 2023년 전체 박스오피스 6위에 올랐다. 2D뿐 아니라 아이맥스와 돌비시네마 포맷까지 상영을 확정했다.
오는 15일에는 12살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운명적인 첫사랑을 그린 영화 ‘렛 미 인’이 10년 만에 재개봉된다.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1위에 오른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은 슈퍼스케일드 4K로 재탄생해 오는 22일 메가박스에서 상영된다. 혁신적인 음악으로 록의 역사를 새로 쓴 밴드 도어즈와 전설적 프론트맨 짐 모리슨의 무대 및 뒷이야기를 담은 영화 ‘도어즈’도 4K 리마스터링돼 이달 중 재개봉한다.
지난해 재개봉 영화의 저력을 확인한 만큼, 이벤트성이 아닌 정기적으로 재개봉 영화를 선보이는 경우도 생겼다. 지난해 11월 CGV는 ‘명작을 어필하다, CGV 월간 재개봉 어바웃 필름’을 시작했다. 매달 1편의 작품을 선정해 극장에서 상영하고, 주차별로 다양한 굿즈를 증정한다. 지난 1일 개봉한 ‘색, 계’가 이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한 영화관 관계자는 “재개봉작이 영화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다. 검증된 영화를 보려는 관객의 성향이 점점 강해지는 데다, 10·20대 젊은 관객에겐 오래된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게 처음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며 “올해 개봉작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과거에 좋았던 작품들을 돌이켜보며 재개봉하는 흐름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