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케이팝은 어떻게 거리의 음악이 됐나

입력 2025-01-03 00:32

꿈과 희망 담은 가사에 춤과 후렴구까지…
언어 뛰어넘어 글로벌 민중가요로 자리잡아

K팝이 거리로 나왔다. 엄동설한에도 이어진 대통령의 탄핵 촉구 집회 현장에 온통 K팝과 응원봉이 넘쳤다.

탄핵과 관련된 추임새가 없으면 더 이상 심심해서 노래를 못 듣겠다는 고인물 K팝 팬덤과 꺼지지 않는 처음 만난 빛에 감화돼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응원봉을 검색하는 속칭 ‘머글’ 일반인이 한껏 뒤엉켰다.

음악 프로그램 사전녹화나 야외 행사 경험을 바탕으로 추위와 더위에 강하고, 기다림에 익숙하고, 외치는 데 특화돼 있는 K팝 팬의 특수성이 이들을 집회 우등생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도무지 웃을 일이 없는 날 속에서 찾은 귀한 웃음 조각이었다.

거리에 쏟아진 K팝에 새삼 놀라는 사람들의 한편, K팝은 언제나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짚어주는 목소리도 있었다.

실제로 K팝은 최근 국경을 넘어선 각종 집회 현장에서 자주 울려 퍼진 어느덧 익숙해진 거리의 노래다.

K팝 대표곡을 넘어 이제는 시대의 민중가요가 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보자. 2016년 이화여대 농성장에서 학생들이 함께 부르는 모습이 SNS에 퍼지며 화제를 모은 이 노래는 사실 이전에도 다양한 장소, 다양한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총리 퇴진과 왕실 개혁을 요구한 2020년 태국 반정부 시위까지. ‘다시 만난 세계’는 언어와 상관없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진 연대의 울림이었다.

생각할수록 흥미롭다. 무엇보다 한국뿐만이 아닌 다양한 국가의 민중가요 자리에 K팝이 자리했다는 점이 그렇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시피 K팝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장르보다 탈정치를 지향하며 진화한 장르다.

K팝의 금기에는 정치나 종교 등 피를 나눈 가족 안에서도 이성적 토론이 쉽지 않은 영역을 기본으로 K팝 세계화와 함께 성별, 인종과 관련된 논의도 추가돼 갔다.

몸집이 커지면 커질수록 민감한 가지를 쳐나가다 보니 K팝은 점점 둥글고 추상적인 무언가가 돼갔다.

가수의 지향도 둥글어진 음악을 따라갔다. K팝 음악이나 가수의 정치적 발언은 아이돌의 연애와 같은 카테고리에서 있지만 없는 취급을 받는 것이 K팝의 불문율이었다.

때문에 K팝은 때로 ‘표백됐다’는 비판을 들었다. 영미권 부모들 사이 자녀들이 갖은 가십의 중심에 선 팝스타나 육두문자가 남발하는 힙합 가수의 음악을 듣느니 K팝 듣는 걸 선호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여기저기 정신없이 깎이다 보니 의외의 것들도 깎여 나갔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내포된 표현, 사랑 노래에서 등장하는 관습적인 성별 지칭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 빈자리에 K팝의 탄생부터 굳건히 자리를 지켜 온 것들이 채워지며 흥미로운 화학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꿈과 희망, 용기와 사랑. K팝을 좋아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기필코 위로받았던 바로 그 언어들이었다.

흥을 돋우는 춤이 필수인 건 물론 중독성 넘치는 챌린지용 후렴구까지 필수로 갖춘 장르 특성도 유효했다. K팝은 표현은 과감하되 사상은 안전한 독특한 음악이었다.

그렇게 ‘표백된 언어’와 ‘고도화된 리듬’이 K팝과 거리의 간격을 좁혔다. 수십 년에 걸쳐 새하얀 도화지 같은 속성을 갖춘 K팝은 같은 시간 빠순이로, 여성으로, 소수자로, 국민으로 그 누구보다 정치화될 준비가 된 이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얹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됐다.

‘다시 만난 세계’의 첫 소절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가 ‘Whiplash’의 ‘2/2/3/2’ 당김음 구호에 특화된 리듬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문화의 힘이 놀랍고 무서운 건 그것을 단순한 유행이나 물성으로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측건대 앞으로 더 많은 K팝이 거리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거리의 목소리, 국민의 목소리와 함께.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