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24) 어른들과 내기 골프… 300m 장타 선보이며 큰돈 벌어

입력 2025-01-03 03:03
최경주 장로가 2008년 경기도 용인 레이크사이드CC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 골프대회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가 한 달 만에 서산지역을 다 평정했어. 제아무리 프로라고 해도 여기서는 힘을 영 못 쓴다니까.”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얼마나 잘하길래 저렇게까지 얘기하는 거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만만찮은 능구렁이였다. ‘이분들은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할까.’

내 호주머니에는 딱 5000원만 있었다. 왠지 어른들이 내기하자고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 명이니 한 사람당 최소 10만원씩 깔 텐데, 총 30만원은 필요했다. 당시에는 믿음이 없어서 기도 대신 다짐을 했다. 나는 먼저 9홀씩 계산을 하자고 하려고 했다. 그 정도면 대략 실력이 나올 거로 생각했다. “서산에서는 어떻게 계산합니까.” “우리는 스트로크 하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스트로크는 내기 골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방식이다. 1타당 정한 금액을 각자 스코어의 차이를 곱해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주는 방식이다. 하수에게 불리함을 만회해주기 위해 핸디캡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리 내 놓고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는 못 해도 70대는 칠 거로 생각하고 한 사람당 10만원은 딸 수 있겠다고 계산했다.

“사장님. 골프장에서는 프로가 오너인거 아시죠. 먼저 치시죠.” “그럴까. 그럼 내가 먼저 치지.” 어른들이 먼저 티샷을 치고 내 차례가 됐다. 모두가 간과한 것이 있다. 당시 나는 혈기왕성한 시기라 공을 쳤다 하면 멀리 나가던 시절이었다. 공이 그냥 멀리 가는 게 아니었다. 젊을 때 잘 나가갈 때는 300m 이상 치기도 했다. ‘장타 하면 최경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드라이브를 치자 어른들의 입이 동시에 떡 벌어졌다. 완전히 놀란 것이다. 첫 타에 공이 그린 앞까지 간 것이다. 표정을 보니 ‘큰일 났다. 이거 어떻게 하냐’하는 표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부터 어른들은 페이스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헛스윙을 날리기도 했다. 그렇게 첫 홀에서만 12만원을 벌었다. 두 번째 홀에서는 더블을 쳐서 번 돈이 두 배가 됐다. 시작부터 종잣돈이 확보된 것이다. 초반 흐름을 탄 나는 버디를 하기도 했다. 남들이 어떻게 치든 관심이 없었다.

어른들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공을 치기도 전에 자진 납세했다. 나중에는 골프 가방에 돈을 넣을 곳이 부족해 바지 뒷주머니에까지 넣는 지경에 이르렀다. 속으로는 너무 기뻤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을 딴 것이다. 라운딩이 끝난 후 라커룸에서 돈을 세어 보니 무려 230만원을 벌었다. 무엇보다 기록이 너무 잘 나온 것이 가장 기뻤다. 그날 평생 처음으로 67타를 쳤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