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한은 총재의 용기

입력 2025-01-03 00:40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22년 10월 계열사 CEO 대상 세미나에서 손자병법 군쟁(軍爭) 편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며 경영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우위직 이환위리 (以迂爲直 以患爲利)’라는 고사성어로, 다른 길을 찾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고난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 발언은 특히 계열사 SK하이닉스가 HBM(고대역폭 메모리) 개발로 반도체 시장에서 만년 2위라는 평가를 뒤엎고 경쟁사인 삼성전자를 따라잡은 사례와 맞물리며 주목받았다. 단순히 전략적인 회피가 아니라 시장의 흐름과 필요를 정확히 읽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결과였다. 따라서 뒤에 나오는 ‘후인발선인지(後人發先人至·비록 뒤에 출발하더라도 먼저 도착할 수 있다)’는 가르침과 맥락을 같이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에 갇힌 채 새해를 맞은 한국 경제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터널 속으로 진입했다. 이처럼 갑갑한 상황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어제 신년사에서 2년여 전 최 회장이 설파한 ‘이환위리’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어렵지만, 발상의 전환을 통한 전략적 사고와 대응을 한다면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했다. 특히 이 총재는 최상목 대통령 권행대행 부총리를 지지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최 대행이 전날 2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데 대해 여권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자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최 권한대행이 대외 신인도 하락과 국정 공백 상황을 막기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해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고 두둔한 것이다.

이는 손자가 말한 이우위직(以迂爲直) 즉 발상의 전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남들이 모두 Yes라고 말할 때 당당히 No라고 응수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결국 국민들을 이로운 지점으로 이끌 수 있음을 다른 국가 지도자들도 명심해야 한다.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는 서양 격언처럼, 지금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어려움을 딛고 다시 도약할 기회를 만들어야 할 때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