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마치 두려움과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으나, 그 감정은 무서울 때와 흡사하다. 똑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부절못하며 입이 벌어진다. 나는 연신 침을 삼킨다.”
영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지성 CS 루이스(1898~1963)가 ‘헤아려 본 슬픔’에서 묘사한 감정이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갑자기 사별한 상실감 속에서 루이스는 “은근히 취하거나 뇌진탕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밝혔다.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든 받아들이기 힘들고 만사가 재미없으나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루이스는 “집이 텅 빌 때가 무섭다”면서 “사람들이 있어 주되 저희끼리만 이야기하고 나는 가만 내버려 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179명의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간 무안 제주항공 참사의 유가족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사고가 난 지난달 29일 주일부터 무안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유족들은 한 평 남짓한 4㎡ 넓이의 텐트에 머물렀다. 사람들이 곁에 있어 주되 가만 내버려 두면 좋은 상황을 유지했다. 무안공항 현지에서 국민일보 종교부 취재기자를 만난 한 유족은 “이번 참사로 여동생을 잃었다”면서 “사흘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과 한국교회봉사단이 유가족에게 따듯한 물이 담긴 텀블러와 티백을 건넨다. 위로의 말 몇 마디와 간단한 묵례, 그리고 침묵이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 앞에서 그저 옆에 있어 주고, 다시 기운을 내도록 무언가 먹을거리를 챙겨주는 이들. 사고 당일 주일예배가 끝나고 난 직후 천막 등 장비를 챙겨 무안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이들은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로마서 말씀 그 자체를 실천하고 있다.
교회 공동체에선 장례를 치르는 일이 많다. ‘그만 울어요. 권사님은 천국 가셨으니까 오늘까지만 슬퍼하고 이제 내일부터는 슬픔 끝입니다.’ ‘하나님이 집사님을 곁에 두고 싶어 하셨나봐요.’ ‘여기서 고통을 받는 것보다 고통 없는 하늘나라가 나을 수 있어요.’ 이런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고 국민일보에 ‘교인 풍경’을 기고한 강현숙 작가는 밝혔다. 교회에서 친하니까 위로한다고 하는 말이 상처가 되는 경우다. 천국에 갔으니 울지 말라니. 천국에 갔어도 이 땅에서 볼 수 없어 느끼는 슬픔을 표출하면 안 되는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은 급작스러운 상실에 짧은 기간이나마 믿음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루이스 역시 ‘헤아려 본 슬픔’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중략) 다른 모든 도움이 헛되고 절박해 하나님께 다가가면 무엇을 얻는가. 면전에서 ‘쾅’ 하고 닫히는 문”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때문에 루이스는 “내게 종교적 진리에 대해 말해주면 기쁘게 경청하겠다. 종교적 의미에 대해 말해주면 순종해 듣겠다. 그러나 종교적 위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당신은 모른다’고 나는 의심할 것이다”고 말했다. 섣부른 위로를 경계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섣부른 위로보다 충분한 애도가 우선이라고 정명호 서울 혜성교회 목사는 말한다. 정 목사는 참사 앞에서 위로가 될 말씀을 묻는 국민일보 취재진에 요한복음 11장 나사로를 살린 예수님 이야기를 전한다. 예수님은 심령에 비통함을 느끼고(요 11:33) 눈물을 흘리며(요 11:35)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요 11:38) 무덤으로 가셨다. 기적에 앞서 애도와 슬픔이 먼저였다. 헤아려 본 슬픔이 훗날 위장된 축복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지만 그건 슬픔을 충분히 표출한 이후의 일이다.
세월호 이태원 오송지하차도 등 사회적 참사가 반복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책임자를 찾아 추궁하고 그 책임 소재를 밝혀 조속히 사건을 종결하려고 한다. 비극적 참사 앞에서 시간을 두고 상실감을 겪는 이들을 지켜봐주고 공감해 주는 일에는 소홀했다. 한국교회가 섣부른 위로보다 충분한 애도로 상심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함께하면 좋겠다.
우성규 종교부장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