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이 왜 상의도 없이 결정하나”… 국무회의서 고성 반발

입력 2025-01-02 03:22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지난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고, ‘쌍특검법’(내란·김건희 특검법)에는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김지훈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지난 31일 국무회의에서 밝힌 헌법재판관 2인 우선 임명 결정 사실은 회의 시작 30분 전 참모들이 완성한 모두발언 원고에 없었다. 국무위원 대부분은 전격 발표를 사전에 모른 채 회의장에 들어갔다. 국무회의 자리에서의 격렬한 언쟁과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의 일괄 사의 표명은 최 권한대행의 선택이 그만큼 여권 내부에 큰 충격을 줬음을 의미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재판관 임명으로) 최 권한대행이 무조건 여권 편을 들지는 않을 거라는 게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국무회의 참석자 등에 따르면 최 권한대행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재판관 임명을 결정했다”고 모두발언을 통해 밝히자,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차례로 반발했다. 일부 참석자는 재판관 임명이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의 권한을 벗어난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복귀할 경우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국무회의 참석자는 “누구와 상의했느냐고 따졌고,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낸 이들도 있었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최 권한대행은 “혼자서 고심해 결단했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또 “무안(참사)만 아니었어도 이미 사직하려고 했다. 내가 월권했다면 사직하겠다”는 언급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재판관 임명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느냐”며 최 권한대행을 두둔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회의가 끝난 뒤 일부 국무위원들 앞에서 (최 권한대행이) 눈물을 보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태규 직무대행은 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적 정당성이 약한 장관이 자신에게 권한이 있다고 해서 다른 국무위원들이나 정부위원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최 권한대행을 직격했다. 최 권한대행이 재판관 2인의 임명을 결정한 것은 대통령직 ‘대행의 대행’이 갖는 권한에 비춰 과도했고, 충분한 숙의 없이 결정됐다는 비판이다. 복수의 국무회의 참석자는 최 권한대행의 발표가 일방적인 고지라고 느꼈으며, ‘경제 불확실성’을 임명 이유로 든 것도 납득이 쉽지 않았다고 국민일보에 전했다.

여권에선 최 권한대행이 이같이 중대한 결단을 왜 갑작스럽게, 충분한 논의 없이 내린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 종일 계속됐다. 정무 분야에서는 여당과 대통령실의 의견을 더 수용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컸다. 야당 역시 재판관 2인만 ‘선별 임명’한 것을 비판했지만, 이는 ‘짐짓 그러는 것’이라는 말마저 여권 내에서 나왔다.

정부에서는 경제관료 출신인 최 권한대행이 나름의 절충안을 꺼내 들어 주가 하락, 환율 급등 등의 경제적 혼란을 막겠다고 결단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향후 야당이 특검법 등을 재차 발의할 때 최 권한대행의 결정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민지 이경원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