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방안이 지난해 만들어졌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 리스크 영향으로 발표가 늦춰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국내 증시 부양의 키인 국민연금이 ‘코리아 밸류업지수’ 투자를 외면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 초 일찌감치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춘 밸류업 방안을 마련한 뒤 수개월째 검토를 이어가며 발표 시점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엔 지난해 11월 발표한 10조원의 자사주 매입 계획 이외의 추가적인 주주환원책과 향후 투자 계획, 인수·합병(M&A) 계획 등 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기반으로 삼성물산, 삼성증권 등 업종 대표 종목으로 꼽히는 주요 계열사들도 밸류업 공시안을 준비한 상황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2월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 차원에서 기업가치와 주가를 높이는 밸류업 정책을 발표했다. 5월 마련된 공시 가이드라인에 따라 현재 밸류업 공시에 참여한 기업은 100여곳으로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은 코스피 기준 50% 수준이다. 삼성그룹은 아직 공시한 계열사가 단 한 곳도 없다.
삼성전자가 공시를 미루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꼽힌다. 이 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돼 다음 달 3일 항소심 선고기일을 앞두고 있다. 삼성은 내부적으로 이 회장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밸류업 공시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내놓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피 시총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공시 지연 영향으로 밸류업 정책은 조기에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밸류업지수 종목에 편입돼 있지만 밸류업 공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앞서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9월 100개 종목으로 구성된 밸류업지수를 공개했고, 이후 5개 종목을 추가 편입했다. 한국거래소는 오는 6월 정기심사부터 100종목으로 재조정하면서 공시 이행 기업 중심으로 지수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번에 밸류업지수에 선정된 기업들은 2년간 편출을 유예한다는 방침이 있었지만 결국 5개 종목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일부 종목은 퇴출될 수밖에 없다. 원칙적으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공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수에서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국민연금은 밸류업 프로그램 동참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벤치마크(기준수익률) 지표로 밸류업지수 활용을 검토 중이다. 만약 밸류업지수가 벤치마크로 사용되면 국민연금의 수조원의 자금을 비롯해 기관투자자의 자금이 지수 편입 종목 위주로 유입돼 자연스레 증시 부양 효과가 나타난다. 국민연금 내부적으로는 삼성전자가 지수에서 빠질 가능성이 있는 상태라면 지수 활용이 곤란하다는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삼성이 지배구조 개선책을 제외하더라도 밸류업 공시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성장성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시장의 관심은 신사업 투자, 반도체 부활 등 경쟁력 제고 방안에 쏠려 있다”며 “지배구조 개선 방안은 추후 발표해도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