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의 수출액이 6838억 달러를 기록하며 2년 만에 역대 최고액 기록을 다시 썼다. 2023년보다 8% 이상 증가한 수치로, 전 세계 국가 중 수출액 순위가 6위로 올라설 가능성도 커졌다.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무역수지가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한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수출 증가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수출액이 전년 6322억 달러보다 8.2% 늘어난 6838억 달러로 잠정 집계됐다고 1일 밝혔다. 2022년 기록한 역대 최고 수출액 기록인 6836억 달러를 2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겉보기에는 차이가 크지 않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 2022년에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수입물가가 높아지며 무역수지는 478억 달러 적자를 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이며 수입액이 줄어든 덕분에 무역수지가 518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흑자 규모로는 2018년 697억 달러 이후 6년 만의 최대치다.
세계 수출 순위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표한 지난해 1~9월 누적 수출액 기준으로 한국은 5086억 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6위에 올랐다. 이는 2023년 8위에서 두 계단 상승한 것이다. 추세를 고려하면 6위 이상의 순위도 기대해볼 만하다. 해당 기간 한국의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9.6% 증가해 수출액 상위 10개국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반면 5위인 일본과 7위인 이탈리아는 각각 -1.9%, -0.4% 감소했다.
호실적의 중심에는 반도체와 자동차가 있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대비 43.9% 급증한 1419억 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이는 작년 한국 전체 수출의 20.8%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반도체는 범용 메모리 가격 하락에도 고부가가치 제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DDR5 등을 중심으로 연말까지 수출이 확대되는 모습이어서 내년 전망도 밝은 편이다. 자동차 수출은 사상 최대였던 전년보다는 소폭(-0.1%) 감소했으나 708억 달러(전체의 10.4%)로 2년 연속 700억 달러 이상을 기록하며 ‘수출 효자’ 노릇을 했다.
국가별로는 대중국 수출 증가가 두드러졌다. 반도체, 석유화학, 무선통신기기를 중심으로 대중국 수출액은 6.6% 늘어난 1330억 달러를 기록했다. 또 미국, 유럽 등 주요 수출국 9개국 중 7개국에서 수출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수출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며 올해 법인세 수입 증가가 기대된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될지는 불확실하다. 관세 폭탄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0일 공식 취임한다.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새로운 미국 행정부가 보편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이 최소 9.3%, 최대 13.1%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는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며 환율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원재료와 중간재를 수입하는 기업들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제 환경이 불확실하고,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이 중국의 과잉 공급 영향에 노출돼 있어 수출 둔화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