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준 기자의 교회 아재] 떠난 자와 남은 자의 교회

입력 2025-01-04 00:43
한국교회 안에서 40대 아저씨들은 멸종 위기종이나 다름없다. 목회자가 되지 않은 이상 직장과 가정생활에 매몰돼 교회를 멀리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 아저씨들의 우정 회복이 시급하다. 사진은 기도하는 손. 픽사베이

얼마 전 거울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한때 ‘교회 오빠’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교회 아재’라는 이름이 더 자연스럽다. ‘M’자를 그리는 탈모 탓일까 아니면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40대 감성 때문일까. 오늘 첫발을 떼는 이 칼럼에서는 교회 아재로서 떠난 자와 남은 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교회 아재’라는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아저씨의 낮춤말’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그치지 않는다. 교회의 A부터 Z까지 다룬다는 뜻에서 AZ, 곧 ‘아재’를 떠올렸다. 평생 교회라는 공간에서 살아온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교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담아내겠다는 다짐이다.

기자는 올해로 마흔 살이 됐다. 신앙생활의 시작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회 집사님 가정에서 태어난 덕에 자연스럽게 교회 꼬맹이로 자랐다. 초등부 시절에는 노회 합창대회와 독창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전국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결과는 입상 실패였지만 그 경험은 교회와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중등부 시절에는 사춘기를 겪으며 교회를 멀리했지만 ‘믿음의 용사’였던 친구를 따라간 흰돌산기도원의 겨울 수련회에서 전환점을 맞았다. 친구가 방언을 체험하는 모습을 보며 ‘거룩한 질투’를 느낀 소년은 “나도 방언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끝에 방언의 은사를 체험했다. 이후 중·고등부 목사님 곁에서 교회 일을 도맡아 하며 ‘믿음의 용사’로 불리기도 했다.

고등부 시절에는 찬양 인도를, 대학 시절에는 캠퍼스 선교단체 활동을 통해 학원 선교에 힘썼다. 청년이 된 믿음의 용사는 “입에 술 한 방울 대지 않겠다”는 결연한 선언과 함께 술자리에서는 소주 대신 간장을 마시는 무모함을 발휘하기도 했다. 서른 살 무렵까지는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며 아이들을 신앙의 길로 이끌었다. 직장도 기독교방송을 택했다. 현재는 국민일보 종교국에서 일하고 있다.

‘덕업일치.’ 뭔가에 열성적으로 빠지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적 변형인 ‘덕후’와 업(業)을 합친 신조어다. 좋아하는 교회 관련 일을 하며 돈까지 번다. 딱 나의 이야기다. 그런데 기자의 요즘 교회 생활은 공허하다. 취재 중 만난 신앙인의 간증과 목사님 설교에 울컥하며 신앙의 불씨를 되살리곤 하지만 일상에서의 교회 생활은 선데이 크리스천에 가까운 모습이다. 직장생활과 육아에 치이며 교회 봉사를 내려놓은 지 오래다.

그 많던 교회 친구도 없다. 함께 ‘믿음의 용사’로 불리던 친구들 상당수가 교회를 떠났다. 실제로 한국교회 내 40대 남성, 넓게 보면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의 이들은 멸종 위기종이나 다름없다. 목회자가 되지 않은 이상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 매몰돼 교회를 멀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떠나지 않은 이들도 교회 봉사와 직분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신앙의 끈을 겨우 붙잡고 있는 형편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이 칼럼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최근 ‘떠난 자’와 ‘남은 자’를 인터뷰하며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교회를 떠난 이유는 인간관계의 갈등, 경제적 부담, 신앙에 대한 회의 등 다양했다. 남아 있는 친구들도 적지 않은 고충을 토로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곧 한국교회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칼럼은 단순히 교회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떠난 친구들과의 우정을 회복하고, 다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교회를 떠났더라도 신앙 안에서 여전히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이를 위해 작은 실험도 계획 중이다. 과거 셀 모임처럼 친구들과 기도 제목을 나누거나 함께 기도원을 방문하는 이벤트도 계획 중이다. 이런 활동들이 각자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된다.

앞으로 이 칼럼에서는 과거 믿음의 용사였던 아재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담아볼 예정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현재 한국교회에 어떤 인사이트를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여러분도 오랜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작은 우정이 큰 기적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