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다양성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제3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대상을 받은 이진원(24)씨는 지적 장애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을 힘들게 보냈던 그는 특수반이 있는 중학교부터 특수반 교사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중학교 때도 친구들을 못 사귀다가 특수반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니 그때부터 사람들의 눈도 마주치고 사람들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이름을 불러준 사람들을 특성에 맞게 그려주기 시작했습니다.”(어머니 강선옥씨)
처음 자기 이름을 불러주며 챙겨준 특수교사 이백조 선생님을 그린 작품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이백조 선생님’이 이번 수상작이다. 포트폴리오를 보면 미술학원 선생님들, 또 이모라 부르는 엄마 친구들, 복지관에서 만난 사람들이 화폭에 담겼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도 그린다고. 공통점은 모두 친절하고 다정하게 자기 이름을 불러준 사람들이다. 작품 제목마다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가 수식어처럼 붙는 이유다. 각기 다른 얼굴을 특히, 다 다른 눈의 표정 차이를 포착해내고 원색과 파스텔톤의 화사한 색면으로 표현한 이진원의 작품에서는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의 기뻤던 마음이 환하게 묻어난다.
그런데 초상화를 그리는 이진원의 캔버스에는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다. 의아하다.
“왜 안 그랬겠어요? 엄마도, 누나도 그려 달라 졸랐지요. 한데 졸작이 나왔지 뭡니까! 색도 칙칙하고….”
이진원은 왜 가족을 그리지 않았을까. 추정컨대 가족은 뒤로 넘어져도 나를 받쳐줄 사람, 영원한 내 편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에게 가족은 굳이 따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다. 초등학교 시절, 사람 대신 동물을 그렸던 그가 마침내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가지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업에서 이른바 ‘ESG 경영’ 바람이 거세졌다. 환경보호(Environment), 사회공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비재무적 지표도 중시하는 기업 경영의 초점이 이전 환경에서 사회공헌으로 옮겨지면서 몇 년 사이 신경다양성 작가를 채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채용되면 통상 재택근무를 하며 하루 4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석 달에 한 번 그림 한 점을 제출하고, 120만원가량 월급을 받는다. 이진원도 비슷한 제안이 왔지만 어머니는 거절했다고 한다.
“거기는 재택근무잖아요. 우리 애는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사람을 겪어야 합니다. 집을 나가서 버스도 타고, 직장 안에서 사람과의 갈등도 겪고, 사회 눈치도 보고…. 아웃사이더일지언정 그 테두리 안에 있었으면 합니다.”
이진원은 지금 사단법인 일배움터가 운영하는 카페의 제주도청 지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 바리스타를 하니 손님의 커피 주문도 받고,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하는 모습도 본다. 그렇게 사회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비장애인이 한 공간에서 섞여 사는 사회란 쉽지 않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속성상 현장근무 때의 관리 비용, 리스크 감수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니 재택근무를 선호할 것이다. 현재의 재택 채용 방식도 장애인의 경제적 독립을 지원한다는 점에서는 중요하다. 하지만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다. 미술의 범주를 넘어 신경다양성 작가들이 사회성을 기르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 섞여 사는 사회, 아르브뤼미술상은 포용적 예술을 넘어 그런 포용적 사회를 꿈꾼다.
제3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자 전시회가 오는 22일 서울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KCDF갤러리에서 개막한다. 수상자 13명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전시 제목은 ‘지금,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장애·비장애인이 위계와 구분 없이 어울려 사는 사회를 향한 행동 촉구의 마음을 담았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